열수레의 책읽기

[어젯밤-제임스 설터] 사진처럼 찰나를 담아낸 단편집

슬슬살살 2015. 12. 19. 14:51

소설과 사진의 차이
소설은 흐름이 있고 사진은 장면이 있다. 사진작가는 긴 인고의 시간중에 단 한 장면만을 포착해 낸다. 좋은 사진작품은 비밀스러운 이야기중 단 한 장면만을 내보이고는 댓가를 요구한다. 상상해봐. 반면, 소설은 흐름이 있다. 아무리 짧은 소설이라 할 지라도 이야기 구조를 지니고 있게 마련이다. 당연히 찰나만을 담은 글은 소설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제임스 설터'는 해냈다. 설터는 움직임이 없는 글을 창조해 냈다. 그의 작품들은 이야기를 담고 있으면서 읽는 이에게 특정한 한 장면만을 연상시키게 만든다. 특별한 사건 사고 대신 조금 다른 찰나를 옮겨 온 그의 글은 카메라로 들여다 본 것처럼 자세하면서 철저하게 타인의 입장이다. 설터는 사진처럼 찍은 단편을 썼다. <플라자 호텔>의 경우는 밝은 공원 한 벤치에서 울고 있는 노인이 연상된다. 그는 조금 전 첫사랑과 통화하면서 센 척을 했을 뿐이다.

 

그는 오래된 모자이크 타일이 장식된 그 입구로 나왔다. 사람들은 계속 들어왔다. 밖은 아직도 밝았다. 저녁이 오기 전 투명한 빛이었다. 공원을 향해 난 천 개의 창문 위로 지는 해가 빛났다. 한때 노린이 그랬던 것처럼 하이힐을 신은 젊은 여자들이 혼자서 또는 어울려서 길을 걸었다. 그들과 언제 점심이라도 하긴 힘들 것이다. 그는 그의 인생 한가운데 거대한 방을 가득 채웠던 사랑을 생각했고, 다시는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왜 그랬는지 알 수 없지만, 길 위에서 그는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우리는 그가 울고 있는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알게 모를 동질감을 느낄 수 있다. 그냥 그럴때가 있잖은가.

 

재미와 문장력에 대한 실망
설터에 대한 소개를 보면 '생존한 작가 중 가장 영어를 잘 쓰는 작가', '가장 완벽한 스타일리스트', '미문과 비유의 대가'라고 써있는데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영어, 문장력, 미문 등에 있어서는 원전을 본게 아니니 단정할 수 없지만 번역된 작품들의 소설적 재미는 실망스럽다. 아내의 안락사를 위해 노력하던 남편이 실제로는 정부와 함께 아내를 독살하려던 것이라는 내용의 표제작 <어젯밤>은 독특한 반전구조를 가지고 있음에도 표현의 강렬함이 없다. 실려있는 10개 작품 모두 불륜, 치정을 다루고 있는 것도 단점이다. 비슷비슷한 소재가 반복되는 단편을 연달아 읽다 보면 이게 그 호평 받는 작가의 글이 맞는거야 하며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하게 된다. 제임스 설터 넌 누구냐. 소재의 반복도 반복이지만 글 곳곳에서 끈덕지게 묻어나는 마초이즘, 성도착은 눈살이 찌뿌려진다. 그 누가 이 글들을 아름답다 할 수 있을 것인가.

 

심란하게 기억하는 어젯밤, 찰나.
역자 박상미는 표제작 <어젯밤>을 이렇게 소개한다. 아침에 눈을 뜨며 심란하게 기억하는 어젯밤에 관한 이야기인 동시에, 돌이킬 수 없는 어떤 종국에 관한 이야기. 이 소개는 <어젯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제임스 설터'의 작품들은 심란하게 기억하는 어젯밤 이야기다. 의미없고 지루할 뿐이었던 어제 일들 중 찰나에 대한 기록이다. 그 이야기는 뚜렷한 형체를 가지고 있지 않고 특별하지도 않다. 그냥 그런일이 있었다고 써놓는 일기장 같은거다. 누군가에 추천할 글에 절대 들어가지 않을, 앞으로 추가 작품을 사 볼 일도 절대 없을, 그런 평범한 단편집일 뿐이다. 설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