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과 사진의 차이
소설은 흐름이 있고 사진은 장면이 있다. 사진작가는 긴 인고의 시간중에 단 한 장면만을 포착해 낸다. 좋은 사진작품은 비밀스러운 이야기중 단 한 장면만을 내보이고는 댓가를 요구한다. 상상해봐. 반면, 소설은 흐름이 있다. 아무리 짧은 소설이라 할 지라도 이야기 구조를 지니고 있게 마련이다. 당연히 찰나만을 담은 글은 소설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제임스 설터'는 해냈다. 설터는 움직임이 없는 글을 창조해 냈다. 그의 작품들은 이야기를 담고 있으면서 읽는 이에게 특정한 한 장면만을 연상시키게 만든다. 특별한 사건 사고 대신 조금 다른 찰나를 옮겨 온 그의 글은 카메라로 들여다 본 것처럼 자세하면서 철저하게 타인의 입장이다. 설터는 사진처럼 찍은 단편을 썼다. <플라자 호텔>의 경우는 밝은 공원 한 벤치에서 울고 있는 노인이 연상된다. 그는 조금 전 첫사랑과 통화하면서 센 척을 했을 뿐이다.
우리는 그가 울고 있는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알게 모를 동질감을 느낄 수 있다. 그냥 그럴때가 있잖은가.
재미와 문장력에 대한 실망
설터에 대한 소개를 보면 '생존한 작가 중 가장 영어를 잘 쓰는 작가', '가장 완벽한 스타일리스트', '미문과 비유의 대가'라고 써있는데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영어, 문장력, 미문 등에 있어서는 원전을 본게 아니니 단정할 수 없지만 번역된 작품들의 소설적 재미는 실망스럽다. 아내의 안락사를 위해 노력하던 남편이 실제로는 정부와 함께 아내를 독살하려던 것이라는 내용의 표제작 <어젯밤>은 독특한 반전구조를 가지고 있음에도 표현의 강렬함이 없다. 실려있는 10개 작품 모두 불륜, 치정을 다루고 있는 것도 단점이다. 비슷비슷한 소재가 반복되는 단편을 연달아 읽다 보면 이게 그 호평 받는 작가의 글이 맞는거야 하며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하게 된다. 제임스 설터 넌 누구냐. 소재의 반복도 반복이지만 글 곳곳에서 끈덕지게 묻어나는 마초이즘, 성도착은 눈살이 찌뿌려진다. 그 누가 이 글들을 아름답다 할 수 있을 것인가.
심란하게 기억하는 어젯밤, 찰나.
역자 박상미는 표제작 <어젯밤>을 이렇게 소개한다. 아침에 눈을 뜨며 심란하게 기억하는 어젯밤에 관한 이야기인 동시에, 돌이킬 수 없는 어떤 종국에 관한 이야기. 이 소개는 <어젯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제임스 설터'의 작품들은 심란하게 기억하는 어젯밤 이야기다. 의미없고 지루할 뿐이었던 어제 일들 중 찰나에 대한 기록이다. 그 이야기는 뚜렷한 형체를 가지고 있지 않고 특별하지도 않다. 그냥 그런일이 있었다고 써놓는 일기장 같은거다. 누군가에 추천할 글에 절대 들어가지 않을, 앞으로 추가 작품을 사 볼 일도 절대 없을, 그런 평범한 단편집일 뿐이다. 설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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