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에 대한 후기가 가장 어렵다. 특히 단편들을 엮어낸 '단편집'의 경우에는 더더욱. 짧은 글에는 군더더기가 없기에 잘쓴 단편을 가지고 이래저래 판단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그것도 한편이 아니라 여러편인 경우에는 말해 무엇할까. 게다가 작가가 체호프라면?
체호프가 현대적인 단편소설이라는 장르를 만들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단편 소설의 재미요소. 반전, 스피디, 복선구조, 풍자, 해학 등등. 이런걸 창안한 이가 체호프다. 극 요소로서의 구성을 소설 속으로 끌어들여 연극을 한편 보는 듯한 단편들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 작품집에는 표제작을 비롯해 18편의 단편이 들어 있지만 같은 느낌의 것은 한 개도 없다. 다루고 있는 주제의 스펙트럼도 어마어마 하게 넓어서 외로움, 정신병과 같은 현대질환부터 <굽은 거울>같은 판타지, <어느 관리의 죽음>과 같은 어리석음에 대한 우화까지 어느 하나 평범한 소설이 없다.
<운수 좋은 날>을 떠올리게 하는 <애수>라는 작품에서는 병폐에 가까운 사회 무관심을 이야기한다. 그시절, 러시아 출신의 작가가 말이지.
그런가 하면, 표제작인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에서는 플레베르 식의 감정 실험을 보여 준다.
미려한 문체로 씌여진 순간 순간의 감정변화들이 체호프가 왜 위대한가를 알려둔다.
바다와 산과 구름과 넓은 하늘이 펼치는 신비로운 풍경 속에서 여명을 받아 더욱 아름답고 편안하고 매혹적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와 나란히 앉아, 구로프는 이런 생각을 했다. 사실 잘 생각해 보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우리가 존재의 고결한 목적과 자신의 인간적 가치도 잊은 채 생각하고 행하는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이.
물론 시적인 표현에서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 시대정신이 다르고 미의 기준이 다른 100년간의 격차가 쉽게 조여지는 법은 없다. 다만, 체호프의 삶의 본질을 바라보는 심미안을 가지고 있다. 그의 눈은 세상을 관통하고 소소한 것들 속에서 부조리를 찾아낸다. 그 본질이 체호프의 글 속에 녹아 있을 진저, 그 속에 어떤 희망을 담기는 했을 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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