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공식] 행복에 공식따위는 없다. 그래서 행복한 건지도 모르겠다.
가뜩이나 좁디 좁은 한국의 출판 시장에서 제목은 단순한 표지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렇고 그런 책들 사이에서 독자들의 선택을 기다리는 건 오로지 제목이기 때문이다. 크게 광고를 하거나 베스트셀러 목록에 들지 않는 책들이 제목에 공을 들이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이건 정도가 과했다. <행복의 공식>이라니. 원제는 The Science of Happiness. <행복의 과학>이다. <행복의 공식>이라는 제목이 풍기는 뉘앙스는 법정스님의 <무소유>나 틱낙한 스님의 <화>같이 마음을 다스리는 삶의 지침서나 행복하기 위한 액션 플랜을 제시해 주는 실용서로 생각하기 쉽다. 책을 산 독자들 역시 같았으리라. 그렇지만 이 책은 전혀 정반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객관적으로 측정하기 어려운 행복이라는 영역을 지수화 시키고 뇌와의 상관관계를 통한 과학적인 접근. 그게 이 책의 내용이다. 당연히 표지에 적혀 있는 부제. '인생을 변화시키는 긍정의 심리학' 역시 구라인거다. 씹는 건 여기까지만 하자. 내용 그 자체로는 꽤 괜찮으니까. 다만, 제목과 내용의 괴리를 무시한 제목이 기분 나쁘다는 거다.
우리는 불행을 조절할 수 있고 행복을 배울 수 있다. 대부분의 훌륭한 관념 뒤에는 고대인들의 사상이 숨어 있듯이, 이러한 생각 뒤에도 선조들의 생각이 숨어 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자기 조절을 통해 감정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시도를 '아스케시스'라고 불렀다.
저자의 관심은 행복을 만들어 내는 것에 있다. 저자, 슈테판 클라인은 뇌에서 행복을 느끼는 과학적인 배경을 먼저 제시하고 뇌의 행복인지를 높이는 방법들을 제시한다. 실제로 금욕, 감정의 조절을 통한 행복을 찾는 일들은 고대 구도자들이 해 왔고 이에는 과학적인 근거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흔히 화가 화를 부른다는 얘기를 하곤 한다. 화를 내다가 제풀에 더 화가 나는 경우가 이런 케이스인데 여기에도 뇌과학이 숨어있다. 반복된 감정의 표현은 뇌에 행동을 각인시키고 다음번 동일한 상황에서 동일한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화를 분출하면 할 수록 뇌가 그 사실을 각인한다는 사실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따라서 스트레스를 푼답시고 꽝 화를 내는 것 역시 현명한 선택이 아닌 것이다. 물론 결론이랍시고 내 놓는 '행복해지는 법'은 어디서나 접할 수 있는 그런 내용들이다. '돈이 많다고 행복해 지지는 않는다.', '취미를 가져라', '경쟁보다는 협력과 연대가 중요하다' 등등. 쉽지만 쉽지 않은 액션 플랜들. 그래도 이 뒤에 과학적인 근거를 담도 있기 때문에 고개가 끄덕여지기는 하지만 실행하기는 요원해 보인다.
우리는 행복해 지기 위해서 살고 있다. 행복에 거창한 의미가 있을 것 같지만 실상은 뉴런과 시냅스에 의한 농락일 뿐이다. 역설적으로. 그 때문에 얼마나 행복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