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몬 - 김정률] 복수의 종장
<다크메이지>의 후속작이자 트루베니아 시리즈의 세번째 작품. 전작에서 트루베니아를 드래곤으로부터 지켜내고 중원으로 귀환한 데이몬의 이야기이다. 중원무림의 제일인 - 이계에서의 흑마법사 - 드래곤의 리치 - 카르센 제국의 황태자 - 마계의 마왕으로 육체를 바꾸어 가며 끈질기게 생존해 온 데이몬이 중원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다크메이지>의 구성에 비해 우려먹기도 좀 많고 아이디어가 고갈됐구나 하는 느낌이 드는 작품이지만 역시나 조연들을 잘 써먹고 요소요소에 깔려있는 복선들이 괜찮아서 나름 평작 수준은 유지하고 있다. 경험치가 쌓인 것에 비해 문장력은 여전히 바닥이라는게 한계라면 한계.
중원으로 돌아온 데이몬의 목표는 하나. 모든 일의 흉수인 사준환의 제거이다. 그러나 중원의 판도가 많이 달라져 있는 상황. 마교는 사준환의 지배 하에 잠마련이라는 거대 조직으로 탈바꿈해 있고 정파는 무림맹이라는 느슨한 연합체로 묶여 있다. 정사대전 직후 멸망한 당문과 연을 맺은 데이몬은 잠마련의 복수에 집중한다. 그러나 역시, 이번에도 밸런스 조절을 위해 각종 금제가 데이몬에게 주어진다. 사람을 죽일 수 없는 칠종단금술은 여전히 유효하고 환경이 다른 탓에 마법도 클래스가 낮다. 무공 역시 회복하지 못한 페널티를 가지고 시작하기 때문에 간신히 먼치킨이라는 오명은 벗어날 수 있었다.
남궁세가의 모략을 비롯한 정파 집단의 가식과 위선, 반대로 순수한 무력 중심의 사파를 대조적으로 배치해서 정-사 간의 구분이 없다는 주제로 몰고가는데에는 어느정도 성공했다. 다만 타당성 떨어지는 러브라인의 억지구성, 함정에 빠지고 복수하고, 함정에 빠지고 복수하는 짓거리의 반복이 좀 지겹다. 게다가 독을 쓰는 강시집단을 사용하는 잠마련의 위협이 그리 실질적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도 단점이다. 왠지 나약해 보이는 느낌이랄까. 물론 막판 사준환은 죽지도 못하고 고통받게 하는 복수는 통쾌하다.
이 작품의 진짜 핵심은 카르센 대제, 즉 영호명의 등장과 대결, 구원의청산이다. 카르센 대제 역시 천수를 누리고 마법사들을 동원해 중원으로 건너오는데 성공했으나 그 과정에서 소모된 마법사들의 배신으로 강시화가 되어 잠마련에 귀속되어 있었던 것. 데이몬에 의해 인간으로 돌아와 마지막 대련으로 앙금을 풀어낸다. 최고 경지에 오른 영호명과 데이몬 둘이 마음먹고 덤비는데 사준환이 살아남을리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데이몬은 정파인 당문에, 영호명은 사파인 패왕문을 이끌게 되는 것도 아이러니. 이후 전작에서 자신을 위해 희생한 율리아나를 찾으러 간다는 속편암시 대사와 함께 소설이 끝난다.
정형화된 구성과 단편적인 인물구성으로 전작에 미치지 못하기는 하지만 적어도 스토리를 끌고 나가는 힘은 가지고 있음을 증명한 작품이다. <다크메이지>를 재밌게 읽었다면 무난하게 즐길만한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