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며 화내는 방법- 움베르토 에코] 세상을 올바르게 바라보는 삐딱한 시선
지난 2월, 세기의 지성 움베르토 에코가 세상을 등졌다. 명복을 빈다. 그의 글 중에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에 대한 재미있는 글귀가 있다. 죽음에 대비하는 자세를 묻는 질문에 에코는 이렇게 대답했다.
세상에 남겨지는 모든 사람이 바보라면 삶에 미련이 남지 않을 뿐 아니라 비웃으면서 세상을 떠날 수 있다는 해학이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건 죽기 직전까지 바보임을 깨달아서는 안된다는 것이 핵심이다. 너무 일찍 깨달아버리면 삶이 재미없어질테니까.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며 화내는 방법>은 에코의 해학이 가득 담겨있는 에세이다. 연재했던 컬럼들을 엮은 작품집인데 시일이 흘렀음에도 마음속에 새김할 글귀가 많다.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김영하 작가의 <보다>시리즈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수준에 있어서는 차이가 상당하다. 움베르토는 속세의 사건 하나하나를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작디 작은 생활의 소품들,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왔던 부조리한 생활 습관 등에서 출발해 보다 철학적인 문제를 성찰한다.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을 삐딱하게 바라보고, 사색하며 독설을 내뱉는다. 그게 이상하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던 독자를 한순간에 바보로 만들면서.
'진실을, 오로지 진실만을 말하는 방법'에서는 수많은 단서 조항을 달면서 책임 회피를 위한 회피로를 만들어 놓은 제약사를 예로 들면서 조롱한다. 이 글에서 진실만 말하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어떤말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소비에 대한 관점도 흥미롭다. 양극화와 빈부격차, 과다한 소비 중심의 사회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경고하지만 에코의 아이스크림 이야기만큼 가슴을 울리지 않는다. 에코가 어린 시절 4솔도짜리 큰 아이스크림 대신 2솔도짜리 두개를 사서 양손에 들고 먹으려 하자 부모가 반대했다. 어째서일까. 두 개가 같은 가격인데 왜 부모들은 반대를 했던 것일까.
경제학적으로 아무런 이유를 댈 수 없는 이 반대 속에는 엄청난 이유가 있다. 바로 상징적인 관점의 낭비를 방지하는 차원이다. 2개의 가격이 1개와 같기는 하지만 '양 손 가득히'라는 단서가 이를 과잉으로 만든다. 허례 허식과 거드름의 상징이 양손에 든 아이스크림인 것이다. 이들이 자라서 구찌 가방을 든 이코노믹 승객이 된다.
모든 이야기들을 다 채울 수 없겠지만 세상을 삐딱하게 보는 다양한 '방법'들을 유쾌한 블랙 유머로 다루고 있다. 30년 가까이 흐른 글들인지라 시의성을 고스란히 담기는 어렵지만 글이 꿰뚫는 통찰력은 오늘에도, 내일에도 유효하다. 교양을 살 찌운다라는 표현에 완벽하게 부합할 수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