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 3

[이사 그래피티] 요즘 같은 시대에는 하루키의 낭만도 다르게 보인다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를 비롯해 몇몇 수필집에 실려 있는 하루키의 잡문중 하나. 잡지(관동지방에서만 파는)에 실렸던 기고문 같다. 하루키가 이사를 즐긴다는 내용과 왜 그런지에 대한 가벼운 단상이 실려 있는데 문학적으로 의미있는 단편은 아니다. 그냥 유명 작가 하루키의 자유스러움을 옅보여주는 에피소드일 뿐이다. 내용 자체는 별 게 없지만 재미있는 내용이 있다. 1971년이란 해는 대학의 학생 운동이 일단 전성기를 넘어서고, 투쟁이 음습화되어 폭력적인 내부 투쟁으로 치닫기 시작한 아주 복잡하고 암울한 시기였지만 이렇게 돌이켜보니 실제로는 매일 여자 친구랑 데이트를 하거나 영화를 보면서 제법 뻔뻔스럽게 살았던 모양이다. 그러니 '요즘 젊은 남자들이 이러니 저러니 하고 잘난척 얘기할 수는 도저히 없을 것 같다...

[도쿄기담집] 하루키의 지옥들

제목으로 봐서는 무서운 괴담이지 않을까 싶은데 그렇지 않다. 아무리, 하루키가 시시한 괴담 따위를 쓸까보냐. 여기 실린 이야기들은 우연의 연속이 빚어낸 사건처럼 신기하긴 하지만 있을 법한 이야기들이다. 하루키의 손을 빌었기에 당연히 도시적이고 세련미 넘친다. 그런게 무려 다섯 개다. 우연이 겹치면서 누나와 화해의 계기를 마련한 게이 피아노 조율사(우연한 여행자), 서핑 중 상어에게 물려 죽은 아들을 그리워하는 피아니스트 이야기(하나레이 만), 26층과 24층 사이에서 실종되었다 돌아온 남자 이야기(어디에서든 그것이 발견될 것 같은 장소에서), 날마다 이동하는 신장석 이야기를 쓰고 있는 소설가 이야기(날마다 이동하는 신장처럼 생긴 돌), 마지막으로 이름을 훔쳐간 원숭이 이야기(시나가와 원숭이)까지, 무엇하..

[어둠의 저편] 새벽을 맞이하기 전까지

하루키는 오래 전부터 우리 세계의 양면성을 고민해 왔다. 선과 악의 이분법적인 모습이 아니라 분명히 존재하고 있지만 인간의 인식에 비치지 않는 세계다. 예를 들면 잠들고 난 후 라던가, 거울 속의 세계라던가. 그러한 세계관은 훨씬 뒤에 에서 본격적으로 그려진다. 은 그 10여년 전에 쓰여졌다. 가 평행우주에 가까운 다른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면 은 고작 밤, 그것도 오후 11시와 오전 7시 사이의 반나절을 다룬다. 짧은 시간이지만 잠을 자지 않고 보낸다면 긴 시간이 될 수도 있겠다. "한밤에는 그 나름대로의 규칙과 시간의 흐름이 있는거야, 그런 흐름에 역류하려고 해봤자 별 도리가 있겠나." 에서의 시간은 조금 다르게 흘러간다. 이 시간동안 잃어나는 사건은 3개 정도. 먼저 중국인 매춘부가 폭행을 당하는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