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65

‘오독’ - 창조적 오독을 하는 삶

예술을 비평하거나 평론하는 사람들의 글을 읽다 보면 두 가지 의문이 생긴다. 저 예술가는 정녕 저런 의도를 가지고 이 작품을 만든 걸까?, 어떻게 하면 저 현상을 저런 식으로 분석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 나는 보지 못하는 작가의 의도를 꿰뚫는 혜안이 부럽고 나보다 더 풍족한 삶을 살아가는 듯한 평론가의 모습에 질투를 느끼기도 한다. 그렇지만 기실 모든 작품은 모든 사람에게 다르게 다가가기 마련이고 심지어 작가의 의도라는 것도 알고 보면 직관적인 것 투성이니라 비평은 사실상 오독-즉, 잘못 읽어 내리는 것에서 온다. 물론 작가의 의도가 명확하게 들어나는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그 이면에 있는 정신병리학적 의도나 창작자의 무의식에서 발현되는 장면은 다른 이가 알아채 주어야만 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누가 ..

'그림자로부터의 탈출' - 식민지는 강압이 아니라 스스로 만든다

외계 종족 프록스의 식민지가 된 지구. 과거 우주에서 몰려온 이상 물체들을 향해 지구는 한 몸이 되어, 가지고 있는 모든 무기들 - 핵무기를 포함해 - 을 쏘아 올렸다. 1차 공방에서는 패배했지만 아직 지구는 무기가 남아있었고 자유를 위해 희생하려는 수많은 영웅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 다른 외계 종족, 프록스들이 찾아와 지구의 적을 격퇴하고 동맹을 맺기를 요구했다. 지구는 외계 종족과의 전쟁의 불확실성보다 우호적인 프록스와의 동맹을 선택했지만 동맹과 동시에 그들은 지구에 구획을 가르고 빠르게 식민지화를 시작했다. 그것이 효율적이고 과학적이라면서. "우리를 갈라놓기 위해서지. 조그만 조각들로 갈라서 구역마다 고립되도록. 통제하고 제한하기 쉬우니까. 문명을 지으려면 거대한 사회의 힘, 협력, 정보교환이 필..

'2015년 제15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 한강, 눈한송이가 녹는동안 外

한강 - 눈 한송이가 녹는 동안 / 한강 - 에우로파 / 강영숙 - 맹지 / 권여선 - 이모 / 김솔 - 피커딜리 서커스 근처 / 김애란 - 입동 / 손보미 - 임시교사 / 이기호 -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 / 정소현 - 어제의 일들 / 조해진 - 사물과의 작별 / 황정은 / 웃는 남자 2015년에는 어떤 일이 있었나. 먼저 세월호 사건의 다음 해라는 게 떠오른다. 전 국민이 입은 상처가 아물기는커녕 양 진영으로 나뉘어 그야 말로 더러운 정치공방이 이어지던 해였다.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의 죽음에는 눈을 가린 채 정치적인 메시지로만 날을 세우던 때였다. 연말에는 최순실 게이트가 터져 나왔고. 우리는 이 한 해의 문학상을 통해 2015년의 분위기를 다시 읽어낼 수 있다. 이 해의 황순원 문학상은 한강 작가에게..

'그냥 하지 말라, 당신의 모든 것이 메세지다.' - 매일 업데이트가 필요한 세상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데이터의 흐름을 보는 송길영 대표의 신작이다. 몇 년에 한 번씩 비슷한 책을 내 왔지만 코로나를 거친 지난 2년 동안의 세상 변화를 겪었기에 훨씬 중요한 사회적 흐름이 담겨 있다. 과거에는 과거의 데이터로 미래를 예측했다면 지금은 현재의 데이터 흐름을 가지고 미래를 보기 때문에 훨씬 정확하다. 그래서 더 무섭고. 송길영 대표는 이 책의 대부분을 세상의 변화했음을 증명하는데 쓰고 있다. 세상은 이제 인간을 노동의 영역에서 밀어내는 쪽으로 가고 있으며 어쩌면 노동 자제가 소멸할 지도 모르는 세상이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도태되고, 자아실현을 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따라서 우리는 현행화, 즉 세상의 기준에 스스로를 계속해서 맞춰나가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지금까지는 관리자가..

'제5도살장' - 뭐 그런거지

핵무장 해제의 옹호자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면 전쟁이 견딜 만하고 품위 있는 것이 되리라 믿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이 책을 읽고 드레스덴의 운명을 깊이 생각해보는 편이 좋을 것이다. 그곳에서는 재래무기를 이용한 공중 공격의 결과로 135,000명이 죽었다. 1945년 3월 9일 밤에는 고성능 소이탄을 이용한 미국 중폭격기의 도쿄 공중공격으로 83,793명이 죽었다. 히로시마에 투하한 원자탄은 71,379명을 죽였다. 2차 세계 대전의 모든 전투가 그렇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지옥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던 곳이 바로 드레스덴이다. 아마 공격자가 연합군이고, 폭격지가 독일이어서 많이 알려지지 않았겠지만 전쟁에서 독일이 항복을 선언한 게 저 멀리 일본에 떨어진 핵 때문일 리는 없지 않나. 이 작은 공업도시..

우피치 미술관에서 꼭 봐야 할 그림 100 - 가벼운 미술관 여행

해외의 유명 미술관을 소개하는 시리즈인 '000 미술관에서 꼭 봐야 할 그림 100' 中 하나다. 사실 여행을 가서 미술관을 가기도 쉽지 않은데 거기서 또다시 다수의 작품을 차분히 이해한다는건 한국적인 여행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피렌체에 있는 우피치 미술관은 그 유명한 메디치 가문에서 만든 미술관이고 대표작품으로는 그 유명한 '비너스의 탄생'이 있는 곳이다. 익숙한 작품이 많지는 않지만 '메디치 후원'이라는 일관성 있는 컨셉이 있다. 얼핏 읽기에는 단순한 가이드북 같기는 하지만 설명이 심플하고 어렵지 않아 가볍게 읽을만 하다. 물론 미술관을 일일이 가보는것만은 못하지만 대신 편한 이해를 돕는다는 장점이 있다. 그림의 예술적 의미보다는 스토리텔링에 초점이 맞춰져있어서 그림 문외한도 재밌게 읽는다는 것도 ..

[힐빌리의 노래] 가난은 사회적 문제일까, 개인의 문제일까

세계 최강의 나라에도 어두운 단면이 있으니 그건 극악한 빈부격차다. 대부분의 가난은 흑인과 히스패닉이 차지하고 있지만 '힐빌리' 또는 '레드넥'이라고 불리는 백인 노동자 쪽의 가난 역시 만만치 않다. 그런데 이런 미국의 가난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큰 차이가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가난은 에 나오는 것 처럼, 굶다 못해 쥐를 잡아먹고 영양실조, 몸을 팔고 그야말로 인간의 바닥에서 배고픔을 견뎌낼 지경의 가난이라면 미국의 가난은 건강한 음식 대신 패스트푸드, 8개월 된 아이에게 콜라를 먹이는 무지함, 그리고 알콜과 마약중독으로 대표된다. 저자는 힐빌리가 굉장히 가족 중심, 커뮤니티 중심의 사회라고 생각하고 그것이 해체되면서 보다 심각한 문제가 된다라고 바라본다. 동의한다. 집단 커뮤니티는 최악의 상황에..

[그녀가 눈뜰 때] 물망초 꿈꾸는 강가를 돌아 달빛 먼 길 님이 오시는가

고아원에 버려져 자라고 성폭행과 원치 않는 출산, 백혈병까지 걸리는 비운의 여인 서희와 그녀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베푸는 고아원 운영자의 아들 세준, 세준에게 질투를 느껴 서희를 빼앗으려는 재벌가의 서자 민혁의 이야기다. 내용만 봐도 알 수 있겠지만 전형적인 최루성 멜로 소설이다. 최루성 멜로물, 가 공전의 히트를 친게 2000년이다. 그때의 한국은 정말이지 매일같이 울고 싶었나보다. 삶에 지친 아버지의 초상을 그린 를 필두로 수많은 영화와 소설이 있는 눈물 없는 눈물을 짜내던 시기다. 아마 IMF로 인해 우울해진 세상을 눈물을 흘리지 않고 버티기 힘들었나보다. 우리는 슬픈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야.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 있을 뿐이지.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사랑일지라도. 의 작가 조창인은 97년 를..

[어둠의 저편] 새벽을 맞이하기 전까지

하루키는 오래 전부터 우리 세계의 양면성을 고민해 왔다. 선과 악의 이분법적인 모습이 아니라 분명히 존재하고 있지만 인간의 인식에 비치지 않는 세계다. 예를 들면 잠들고 난 후 라던가, 거울 속의 세계라던가. 그러한 세계관은 훨씬 뒤에 에서 본격적으로 그려진다. 은 그 10여년 전에 쓰여졌다. 가 평행우주에 가까운 다른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면 은 고작 밤, 그것도 오후 11시와 오전 7시 사이의 반나절을 다룬다. 짧은 시간이지만 잠을 자지 않고 보낸다면 긴 시간이 될 수도 있겠다. "한밤에는 그 나름대로의 규칙과 시간의 흐름이 있는거야, 그런 흐름에 역류하려고 해봤자 별 도리가 있겠나." 에서의 시간은 조금 다르게 흘러간다. 이 시간동안 잃어나는 사건은 3개 정도. 먼저 중국인 매춘부가 폭행을 당하는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