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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메의 문단속: 일본 애니메이션의 장점을 모두 가진 영화

이후 오랜만에 만난 일본 애니메이션 수작이다. 과 마찬가지로 일본에 일어나는 대규모 재해를 막는 이야기지만, 이번에는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실제 사례를 다뤘다. 여기에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일본 열도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신화와 버무리는데 판타지임에도 크게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일본에서 지진이 잦은 것은 지하에 지진의 요괴(?)가 봉인되어 탈출하려 하기 때문인데 ‘소타’가 대대로 이들의 탈출을 막아내는 가업을 지니고 있다. 일련의 사고로 의자로 몸이 바뀌어버린 ‘소타’를 도와 여고생 ‘스즈메’는 지진의 문을 닫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곳에 다녀올께" 영화의 마무리, 난데없는 두 주인공의 러브라인의 연결을 제외하고는 나무랄 곳이 하나도 없는 수작이다. 일본을 여행하는 모습에서는 실..

영화 삼매경 2023.05.16

뻐꾸기, 날다: 할 말은 많지만 말하지 못하는

출판 경력이 꽤 되는 중견 작가여서 어느 정도는 읽을 만하겠다 싶었는데, 실망이 더 크다. 수많은 등장인물과 복잡한 서사를 곳곳에 배치하고 있지만 이야기는 하나의 축을 형성하지 못하고 빙글빙글 돈다. 원래의 의도는 정치판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복수극을 통해 돌고도는 먹이사슬의 잔혹함을 그려 내고 싶었던 것 같기는 한데 실력이 의도를 넘지 못했다. 정교한 먹이사슬보다 할말은 많은데 표현이 어려운 아이의 진부한 이야기처럼 지루했다. 팩트 위에 쌓아 올린 세부적인 픽션이 그나마 끝까지 읽는 원동력이 되기는 하지만 정작 등장인물의 심리변화는 설명하지 못한다. 그래도 사전 조사만큼은 끈질기게 했는지 소재의 디테일은 꽤 뛰어난 편.

멍뭉이: 자극 없이 따뜻한 멍뭉이들

딸아이와 둘이 데이트 삼아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본 영화. 강아지를 좋아하지만 못 기르는 한이라도 풀어주려 골랐다. ‘멍뭉이’는 차태현과 유연석 배우의 부드러움과 자연스러움이 잘 녹아 있는 힐링 영화다. 자신의 반려견 ‘루니’를 사정상 다른 곳에 맡겨야만 하는 주인공 유연석이 친한 형 차태현과 개를 맡아줄 곳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그린 로드무비다. 코미디 로드무비가 그렇듯이 길 위에서 그들은 많은 귀여운 개들을 만나고 스스로 성장하며 결국 진정한 안식처는 자기에게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깨닫는 전형적인 영화다. 그렇지만 그림 같은 배경과 곳곳에 배치된 강아지들의 치명적인 귀여움이 영화 내내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가끔 자극 없는 영화가 가슴을 울리는 영화다. 채은이도 무척이나 좋아했다.

영화 삼매경 2023.04.30

공간이 만든 공간 : 유튜브 채널의 확장판

솔직히 말하면 조금 실망했다. 일단은 유튜브의 재기 발랄함과 친절함이 텍스트에서는 딱딱하게 표현됐을 뿐 아니라 많은 내용이 채널에서 소개됐던 내용 위주라 신선함도 떨어졌다. 물론 유튜브라는 것도 작가의 기존 생각이 축약되고 정제되어 보여지는 모습이니 콘텐츠가 비슷한 건 어쩔 수 없다지만 아쉬움은 있다. 공간이 만든 공간에서는 역사적 배경을 통해 건축이 발달하는 필연적 과정을 다루고 있지만 많은 부분에서 제레드 다이아몬드와 같은 거장의 생각을 차용하고 있어 새로움이 많이 떨어진다. 특히 유현준 건축가는 지리적 차이에 따른 건축 양식의 차이를 동서양으로 나누어서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는데 이 부분에서 너무 많은 부분들이 기존 그의 주장의 되돌이표 같은 느낌이다. 지리적 차이가 낳은 역사적 배경, 그 배경에서 ..

사소한 변화 : 뇌의 일부가 바뀌었을 때 그 사람은 온전히 그 사람일까.

스릴러 거장의 초창기 작품 중 하나다. 뇌의 일부를 이식한 사람이 점점 다른 사람이 되어간다는 다소 파격적인 소재를 다루고, 그 배경이 늙어가는 권력자들을 위한 실험의 일부라는 설정은 지금 관점에서 좀 유치한 면이 있다. 하지만 반전과 사건에 집중하는 다른 작가들과 달리 히가시노 게이고는 캐릭터의 심정적인 변화에 집중한다. 그래서 이 뻔한 스토리가 사람을 끌어들이게 만든다. 이제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내 안의 무언가 분명히 예전의 내가 아니다. 지금의 나는 대체 누구인가? 주인공 준이치는 소심하고 조용한 성격이고 아주 온순한 사람이다 우연찮게 강도로부터 어린아이를 지키다 뇌에 총을 맞지만 다행히 뇌 이식 수술을 통해 목숨을 건진다. 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점점 준이치는 난폭하고 세상에 적대적인 남자가 되..

서치 2 - 디지털의 아름다움

전편과 이어지는 것은 없지만 오로지 디지털 매체의 화면만을 이용한다는 특징때문에 서치는 이제 하나의 장르로 봐야 할 것 같다. 커뮤니케이션의 진보를 시리즈로 남긴다면 바로 이 영화다. 갑자기 사라진 엄마를 찾아나가는 과정 속에서 대행 서비스 플랫폼, 우버, CCTV 관리, 번역, 채팅, 페이스타임, 온라인 결제, 비밀번호 찾기 등등 온갖 디지털 수단들을 활용하는데 그 하나하나가 현재의 우리 삶을 함께 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현실적이고 감성적이다. 예상치 못한 진범이 나타나고 위기를 이겨내며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는 플롯은 구태하지만 유려한 그래픽의 애플 화면은 영화 내내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차가운 디지털의 영역에서 디자인의 위대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 주는 영화다. 또한 채팅에서 머뭇거리는 순간, 커..

영화 삼매경 2023.04.09

대한민국은 왜? - 미국은 왜 일본에 원자탄을 투하했을까

이 책은 격동의 대한민국 탄생부터 현재까지 풀리지 않고 있는 친일의 굴레에 이르기까지를 국제정세에 비추어 원인을 치밀하게 파헤친다. 최근 윤대통령의 일본 외교 문제가 친일로 비화되고 있는데 이 책을 읽어 보면 그들이 어떤 정신적 맥락에서 그런 선택을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먼저 미국은 다 이긴 전쟁의 종반에 굳이 일본에 원자탄을 떨어트렸을까를 생각해 보면, 이는 소련에 대한 외교적 경고라고 김동춘 박사는 이야기한다. 2차 대전이 어느 정도 승리로 기울고 있는 시점에서 미국은 우군이면서 이념적으로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소련과 전쟁이 이어질까 두려웠고 원자탄이라는 강력한 경고장을 보내게 되었다. 그 정도로 미국은 공산주의의 확대를 경계했고 동방의 작은 나라의 독립 문제는 큰 고민이 아니었던 것이다. 오..

한반도 평화 오디세이 - 지루한 통일 담론

대한민국의 금수저들을 일렬종대로 세운다고 해도 상위 100명 안에는 들어갈 사람이 바로 이 홍석현 회장이다. 중앙일보와 JTBC의 회장에 이어 주미대사까지 지낸 인물이라 재벌들 중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선출직이 아닌 주요 공직을 경험한 사람이 아닐까 싶다. 보통의 재벌이라면 임명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올 검증 과정과 잡음이 불편할 수밖에 없기에 공직에 대한 꿈을 가지지 않기 마련인데 이 분은 특이하게도 꾸준하게 공적 사업에 관심을 보인다. 능력은 둘째치고 관심만큼은 진짜라 여겨진다. 특히 대북사업과 통일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이는데 관련한 재단 운영과 저서를 꾸준히 내오면서 거대 담론을 제시한다. 보수 언론의 수장으로 오랜 시간을 보낸 만큼 편향적인 시각을 보이지는 않을까 싶은데, 그렇지 않아서 조금 의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