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수레의 책읽기

[반짝반짝 빛나는] 스스로를 따돌리는 은사자의 허영과 허세

슬슬살살 2014. 12. 30. 21:39

◆ 물을 안는다

눈치 빠르게 먼저 방에 들어가서 나는 무츠키의 침대에 다림질을 하였다. 이런 결혼 생활도 괜찮다, 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아무것도 추구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잃지 않는다, 아무것도 무섭지 않다. 불현듯, 물을 안는다는 시아버지의 말이 떠올랐다.

이런 기묘한 동거가 어디 있을까. 동성애자 남편과의 동거라니.. 게다가 소설의 마무리는 남편의 남자친구와의 삼자동거로 끝을 맺는다. 이걸 쿨하다 해야 할지, 가족의 해체로 봐야할지, 아니면 사랑이란 개념을 초월한 또다른 감정선의 발견으로 해석해야할지 난감하다. '물을 안는다'는 표현은 쇼코의 시아버지가 동성애자 아들과의 결혼을 미안해하며 전한 말이다. 형체가 있지만 절대 소유하거나 어울릴 수 없는 만남을 가리키리라. 물론 남편인 무츠키에게만 약점이 있는 것은 아니다. 글 전반에 걸쳐 쇼코는 스스로를 '알콜의존증이 강해 무츠키나 다름없다'라고 생각하고 있다. 동성애를 알콜의존과 같은 맥락으로 보고있다고 읽혀지는 대목이다.

 

◆ 무채색 배경 위에 무채색 주인공
알콜의존과 동성애가 비난 받을만한 일은 아니다. 차이가 있다면 전자는 치료가 가능한 질병이라는 점이다. 물론 둘 다 사회적으로 아웃사이더일 수 밖에 없음은 공통점이다.

"은사자라고 아세요? 색소가 희미한 사잔데 은색이랍니다. 다른 사자들과 달라 따돌림을 당한대요. 그래서 멀리서 자기들만의 공동체를 만들어 생활한다는군요. 쇼코는 말이죠, 저나 곤을, 그 은사자 같다고 해요."

에쿠니 가오리는 소외된 사랑을 하는 이들을 은사자로 그리고 싶었나 보지만 결과물은 기형적인 무채색 사랑이다. 기형적이라고 표현하는 건 동성애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 때문이 아니라 멀티러브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다. 쇼코는 무츠키를 사랑하고 무츠키는 곤이라는 남자 애인이 있다. 무츠키는 쇼코에 대해 동정과 비슷한 공동체 의식 정도를 가지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세 남녀가 행복하게 함게 하는 것이 가능할까. 성애 없는 사랑은 가능하다 생각하지만 3명이 함게 사는 형태의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에쿠니 가오리는 특유의 건조하고 색기 없는 문체로 덤덤하게 두 남녀의 시선을 오간다. 한번은 쇼코의 입장에서 또 한번은 무츠키의 입장에서.. 자신들의 상처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스스로를 보듬는 그들의 모습에서 따뜻함이 아닌 외로움과 고독을 느기는 건 나뿐일까. 스스로 외로움을 자처하는 그들의 모습이 된장녀를 보는 느낌이다. 대화명을 '운명의 데스티니'라고 짓는 중2병의 모습도 오버랩된다. 그정도로 고독을 가장한 허영과 허세가 독보적이다. 저기 은사자의 색깔이 보이는냐고 나에게 묻는다면 난 회색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반짝반짝 빛나는

저자
에쿠니 가오리 지음
출판사
소담출판사 | 2002-02-18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냉정과 열정사이 Rosso』 로 알려진 에쿠니 가오리의 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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