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4

[학] 전쟁 대신 학이나 몰자

아니다. 심지어 작가도 다르다. 하지만 학을 같은 상징으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시대적 배경이 같아서 비슷하게 느껴진다. "어이, 왜 멍추같이 서 있는게야? 어서 학이나 몰아오너라" 그제서야 덕재도 무엇을 깨달은 듯 잡풀 새를 기기 시작했다. 때마침 단정학 두세마리가 높푸른 가을하늘에 곧 날개를 펴고 유유히 날고 있었다. 덕재와 성삼은 같은 마을에서 나고 자란 친구지만 6.25로 인해 하나는 농민동맹 부위원장으로, 하나는 국군으로 만난다. 서로 어쩔 수밖에 없는 운명이란 걸 알면서 잔혹한 대립을 해야 하는 걸, 어린 시절처럼 '학이나 몰자'라는 말로 반전시킨다.

[이사 그래피티] 요즘 같은 시대에는 하루키의 낭만도 다르게 보인다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를 비롯해 몇몇 수필집에 실려 있는 하루키의 잡문중 하나. 잡지(관동지방에서만 파는)에 실렸던 기고문 같다. 하루키가 이사를 즐긴다는 내용과 왜 그런지에 대한 가벼운 단상이 실려 있는데 문학적으로 의미있는 단편은 아니다. 그냥 유명 작가 하루키의 자유스러움을 옅보여주는 에피소드일 뿐이다. 내용 자체는 별 게 없지만 재미있는 내용이 있다. 1971년이란 해는 대학의 학생 운동이 일단 전성기를 넘어서고, 투쟁이 음습화되어 폭력적인 내부 투쟁으로 치닫기 시작한 아주 복잡하고 암울한 시기였지만 이렇게 돌이켜보니 실제로는 매일 여자 친구랑 데이트를 하거나 영화를 보면서 제법 뻔뻔스럽게 살았던 모양이다. 그러니 '요즘 젊은 남자들이 이러니 저러니 하고 잘난척 얘기할 수는 도저히 없을 것 같다...

[도쿄기담집] 하루키의 지옥들

제목으로 봐서는 무서운 괴담이지 않을까 싶은데 그렇지 않다. 아무리, 하루키가 시시한 괴담 따위를 쓸까보냐. 여기 실린 이야기들은 우연의 연속이 빚어낸 사건처럼 신기하긴 하지만 있을 법한 이야기들이다. 하루키의 손을 빌었기에 당연히 도시적이고 세련미 넘친다. 그런게 무려 다섯 개다. 우연이 겹치면서 누나와 화해의 계기를 마련한 게이 피아노 조율사(우연한 여행자), 서핑 중 상어에게 물려 죽은 아들을 그리워하는 피아니스트 이야기(하나레이 만), 26층과 24층 사이에서 실종되었다 돌아온 남자 이야기(어디에서든 그것이 발견될 것 같은 장소에서), 날마다 이동하는 신장석 이야기를 쓰고 있는 소설가 이야기(날마다 이동하는 신장처럼 생긴 돌), 마지막으로 이름을 훔쳐간 원숭이 이야기(시나가와 원숭이)까지, 무엇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