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 타임슬립 이야기가 차고도 넘쳐서 타임 패러독스라는 용어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익숙하다. 이 간단한 논리적 모순을 헤쳐나갈 방어 도구 없이는 아무리 장르물이라 해도 진정성을 의심받는 게 요즘의 타임슬립 물이다. 그런데 도대체 1944년, 식민지 조선이 해방되기 전 해에 출간된 이 소설이 가진 그로테스키함과 과학적 혜안은 믿기지 않을 정도다. 피에르는 자기 조상이 아내를 맞이해 아이를 가질 시간을 갖기도 전에 그를 죽였다. 그러니 피에르는 사라졌고, 그건 당연하다. 그는 존재하지 않고, 존재하지 않았다. 피에르 생느무는 존재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좋다. 하지만 만일 피에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존재한 적도 없다면, 자신의 조상을 죽일 수도 없었던 것 아닌가! 이 소설은 타임 슬립을 다루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