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를 배경으로 활약하는 비밀 스파이 조직. 남자라면 한번쯤 꿈꿨을 그림이다. 킹스맨은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남자의 액션 로망을 충족시키되 너무 무겁지도 복잡하지도 않은 화려한 영화를 킹스맨이 보여줬다. 작동하면 범위 내에 있는 사람들이 이성을 잃고 공격적으로 변하게 되는(분노 바이러스라고 생각하면 딱 알맞다) 유심칩을 이용해 전 세계의 인구를 줄이려 하는 악당이 있다. 그 이유가 황당하게도 인류가 지구에 있어 바이러스라는 이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이미 많은 영화와 소설에서 사용한 적이 있는 소재이기는 하지만 킹스맨에서는 조금 다르게 사용된다. 악당의 목적, 당위성 따위는 철저하게 무시되고 이 어이없는 이유에 의문을 가지는 이는 오로지 스웨덴 왕실의 공주 한명 뿐이다. 그렇다. 이 영화는 이유와 당위성, 인간적인 성장, 고뇌는 없고 선과 악 이분법만이 존재하는 단편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영화 킹스맨은 이런 머리아픈 내용을 멍청할 정도로 단순화 시킨 대신 젠틀하면서 강력한 비밀요원과 액션으로 영화의 재미를 극대화 했다. <킬빌>의 귀족버전이라 생각하면 좋을 듯 하다.
사람들이 열광했던 이유중 하나가 롱테이크로 진행된 액션 장면들이다. 초반 해리(콜린 퍼스)와 에그시(태런 에거튼)이 만나는 맥주집에서는 건달 여섯이 나가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유쾌하면서도 킹스맨이 가지고 있는 수트빨을 제대로 보여주면서 완벽한 동경과 집중을 끌어낸다. 특히나 영국식 억양으로 Manner Make Man을 말하는 콜린 파월은 <아저씨>의 원빈이 머리를 밀 때보다 더 멋지다. 교회에서의 살육씬은 일반인vs킹스맨이라는 구도임에도 엄청난 액션을 보여준다. 약자를 일반적으로 학살하는게 착한편이라는 아이러니, 잔인한 화면과 묘하게 어우러지는 경쾌한 음악, 쉼 없이 이어지는 롱테이크가 입을 쩍 벌어지게 만든다. 콜린 파월이 너무나 어마어마해서인지 후반부 에그시가 펼치는 비밀기지에서의 액션씬은 다소 약한 편이다. 오히려 후반부에서는 머리가 터지는 장면들이 압권이었는데 불꽃놀이처럼 터져나가는 사람들과 함께 깔린 OST가 묘한 느낌을 준다. 장엄하다고 해야 할까. 신나다고 해야할까. <황혼에서 새벽까지>를 볼 때 느꼈던 감정과 비슷했다.
그러면서 스파이 영화에서 필요한 건 다 갖추고 있다. 비밀조직과 엄청난 무기들, 내부의 적, 전 세계를 위험에노출시키는 정치인들, 액션, 잠입까지. 여자만이 후반부까지 드러나지 않는데 세계를 구했다는 에그시의 말에 냉큼 요부로 돌변하는 스웨덴 공주는 이 코미디에 정점을 찍는다. 결코 가볍지는 않은 액션 위에 B급 코미디를 얹고 수트빨로 무게감을 더한 킹스맨은 의심할 여지 없는 A급 영화다. 속편 제작 소식이 솔솔 불어오는데 다음편에도 콜린 파월이 나왔으면 좋겠다. 스웨덴의 공주도...
PS. 진짜 킹스맨이라는 양복점이 있다면 엄청 대박을 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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