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사물함 10번에 버려져서 이름이 일영인 아이. 이 아이는 인천 암흑가의 대모인 '엄마'에게 길러져 세상의 어두운 곳에서 자란다. 쓸모 없는 인간은 죽어야 한다는 지론을 가진 엄마는 냉혹하게 일영을 키운다. 쥐약을 먹어 헐떡대는 개의 목을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삽으로 목을 치는 그녀다. 사채, 마약, 인신매매, 밀매까지 온갖 범죄의 중심에서 거친 삶을 살아가게 된 일영. 미래에 대한 희망 없이 하루하루를 생존해 나가는 그녀에게 변화가 생긴 건 채무자의 아들인 석현을 만나면서부터다. 아버지의 빚때문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가족에 대한 애정과 꿈을 잃지 않는 그를 보면서 평범한 삶을 향한 작은 꿈을 꾼다.
이 영화는 생존에 관한 이야기이다. 밑바닥 인생들의 처절한 생존 분투기이자 흔치 않은 여성 느와르인 이 영화가 주는 찝찝함은 남성 중심의 <비열한 거리>, <달콤한 인생>을 뛰어 넘는다. 상대적으로 작고 여리다 생각되는 여인들이 남성 중심의 폭력 한 가운데에서 살아나가는 과정은 더욱 치열하고 고통스럽고 밑바닥스럽다. 여성이기에 더더욷 그렇게 느껴지는 건 일영의 치마가 어색한 것과 상통한다. 특히나 대부분의 느와르에서 느껴지는 우정, 의리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차이나타운의 패밀리는 정점의 엄마를 포함해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관계처럼 보인다. 그 누구도 인간애로 보이는 감정을 전혀 지니고 있지 못하다는 측면에서 정신지체아로 등장하는 '홍주'를 넘어서지 못한다. 쓸모 없는 인간은 사라져야 하는 그 세계에서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는 것. 이 세계가 돌아가는 원동력이다.
"워 더 하이즈" 내 딸이라는 뜻이다. '엄마'가 얼핏 일영의 뒤에서 그녀를 향해 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알게 모르게 '엄마'는 나름의 방식으로 일영에게 애정을 쏟았는지도 모르겠다. 일견 잘못된 방식처럼 보이지만 이 지옥 같은 곳에서 살아남게 하려는 비뚤어진 애정일 수도 있다. 스스로 일영에게 칼을 맞는 장면에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스스로 쓸모 없어졌을 때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 암흑가 대모에게 내려진 숙명일 수도 있다. 뒤틀리고 비뚤어진 어두운 이야기 속에서 생존하기 위한 일영의 사투 뒤에는 '엄마'가 있음은 부정할 수 없겠다. 그게 어떤 방식이건 그 세계에서 일영은 비로소 쓸모 있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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