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야기/구석구석 방랑가족(여행, 맛집)

[서오릉] 숙적 장희빈과 인현왕후는 한곳에 묻혀있다?

슬슬살살 2011. 12. 7. 19:47

이집트의 피라미드 중 가장 유명한 것은 기자의 피라미드들이지요. 거대한 고대의 무덤들이 한데 모여 있어 상당히 많은 이들이 찾는 곳입니다. 한데 우리나라에도 그런 곳들이 있답니다. 바로 늘 가까이에 있어 그러려니 하고 지나쳤던 <릉>입니다.

 

조선시대의 왕과 왕비가 묻혀있는 곳을 <릉>이라 합니다. 그 중 은평구를 벗어나자마자 무려 5개의 릉이 한데 모여 있는 서오릉이 있습니다. 이곳은 규모도 규모지만 무엇보다 가깝기도 해 쉽게 찾을 수가 있습니다. 입장료는 천원으로 매우 저렴한데다 주변에는 맛집들도많고 릉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산책로 역할을 하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습니다.

 

 

서오릉의 안내도입니다. 릉들을 모두 순회하면 약 4~5km정도 걸을 수 있는데 소나무와 서어나무 등으로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13세의 어린나이에 요절한 순회세자와 세자빈의 순창원 

 

 

제일 먼저 만나게 될 곳은 왕릉이 아닌 순창원입니다. 원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왕이나 왕비의 묘가 아닌 세자와 세자빈의 묘이기 때문입니다. 명종의 장남인 순회세자가 13세에 돌아가셨으며 그의 빈은 그 이후 선조 25년까지 있다가 돌아가시고 이곳에 함께 묻혔다고 합니다.

 

조선의 숨겨진 왕 덕종과 소혜왕후 

왕릉의 모습은 다들 대동소이합니다. 그래도 그런 곳들을 하나하나 찾는 이유는 그것들이 독특한 개성을 가져서라기 보다는 하나하나가 가진 이야기들이 감동을 주기 때문이 아닐까요? 사실 같은 왕의 무덤이라 할 수 있는 피라미드 역시 크기만 다를 뿐 비슷비슷 함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우리의 역사속 왕들의 무덤인 이 <릉> 역시 그러한 사연들이 눈길을 끄는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서오릉의 두번째 만남은 난생처음 듣는 덕종이라는 임금의 릉입니다. 왜 처음 들어보았을까요? 사실 덕종은 임금이되 임금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덕종은 세조의 맏아들로 세자로 올랐으나 20세에 요절하면서 즉위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후 그의 동생이 뒤를 이었으니 그가 예종입니다. 이후 예종도 짧은 재임(1년2개월) 후에 덕종의 아들인 성종에게 보위를 물려주었고 성종이 자신의 아버지를 왕으로 추존하면서 덕종은 한번도 임금이었던 적이 없던 임금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희대의 여장부 장희빈의 초라한 묘 

조선 500년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여인을 꼽으라면 단연 장희빈이 1위일 것입니다.

가장 최근 방영 됐던 드라마 <동이>를 비롯해 수많은 사극에서 다뤄진 장희빈의 묘가 그녀의 생전 가장 대립했던 인현왕후의 명릉 건너편에 묻힌 사실은 아이러니 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현왕후의 릉에 비하면 상당히 초라해 희대의 여인의 묘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지경입니다. 사실 이 묘는 경기도 광주에 있었으나 1969년 이곳으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 장희빈의 묘는 인현왕후의 명릉과 완전히 반대편에 있을 뿐 아니라 명릉 자체는 따로 문을 내어 나머지 릉과 달리 있습니다.

    혹시 장희빈과 나란히 하게 모시게 된 미안함에 이런 작은 장치를 한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따로 묻혀 아직도 주인을 기다리는 홍릉

장희빈의 아들인 경종의 뒤를 이은 숙빈 최씨의 아들 영조가 묻혔어야 할 릉입니다. 먼저 승하한 정성왕후가 먼저 묻혀 그 옆자리가 비었는데 후에 영조가 동구릉에 묻히게 되면서 주인을 잃어 버렸습니다.

 

 

홍살문 뒤편으로 보면 무덤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현재는 때작업 중인지 녹색 그물로 덮어져 있어 더 잘보입니다.

외로운 왕비가 자기의 왕을 기다리는 홍릉입니다.

 

단 14개월간 왕위에 올랐던 예종과 안순왕후의 <창릉>

 

앞서 얘기했던 예종이 묻힌 곳입니다. 예종은 19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즉위하여 불과 14개월만에 승하했습니다. 후에 그의 왕비와 함께 묻힌 곳이 이곳 창릉입니다.

릉의 앞에는 항상 위 사진과 같은 건물이 서 있는데요, 이런 건물들을 정자각이라 합니다. 위에서 봤을 때 丁자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이 건물의 특징은 앞면이 저렇게 먹힌 것처럼 되어 있고 간판 등이 하나도 없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재밌는 사실!, 우리가 보는 저 건물은 사실 뒤편이라는 점입니다. 임금이 보는 방향이 정면이고 우리는 그 뒤편만을 볼수 있는 것입니다. 해서 왕의 무덤은 저 가림막(?)에 가려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또 정자각까지 나 있는 길을 참도라 부르는데 이 참도를 따라가다 보면 정자각의 우측으로 들어가게 되어있어 가까이 가더라도 왕의 무덤을 바로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정자각은 모두 똑같이 생긴 것 같지만 조금씩 다른 모습들을 하고 있어 그런 점을 유심히 보는 것도 재밌습니다.

 

운치있는 산책로 역할을 톡톡히 하는 서어나무길 2Km

창릉을 지나면 2Km정도의 서어나무길이 펼쳐집니다. 서어나무는 울퉁불퉁해 그다지 쓸모가 있는 나무는 아니지만 겨울에 접하니 겨울만의 운치를 한껏 더해주네요.

 

 

꼭 가시나무처럼 보이는 것이 보기에 가히 좋지는 않지만 빽빽하게 들어있는 모습이 이국적인 느낌을 불러 일으킵니다.

 

 

서어나무 길은 중간중간 저렇게 안내판이 친절하게 붙어 있어 얼마나 왔는지, 얼마나 남았는지를 쉽게 가름할 수 있게 해 줍니다. 길은 전체적으로 약간의 오르막이어서 적절히 땀을 낼 수 있는 정도의 코스입니다. 소나무와 서어나무가 어우러져 겨울과 푸르름이 공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서오릉에는 이렇게 서어나무 길 외에도 소나무길이 1.7km정도 조성되어 있습니다.

 

숙종의 원비 인원왕후의 외로운 묘 <익릉>

숙종의 원비인 인경왕후의 릉입니다. 숙종이 제1계비인 인현왕후와 함께 묻히는 바람에 숙종이 묻혀있는 명릉을 바라보면서 홀로 묻혀있는 릉입니다. 11세의 어린 나이에 세자빈이 되어 14살에 왕비에 즉위하였으나 20살이 되던해 천연두로 세상을 떴습니다.

 

 

 

 

사도세자의 어머니인 영빈 이씨의 초라한 묘 <수경원>

 

뒤주에 갇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사도세자의 어머니인 영빈 이씨의 묘입니다. 사도세자가 죽은 뒤에도 천수를 누리다 69세의 나이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어찌보면 아들을 죽인 영조와 함게 묻히지 않은 것이 다행일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영조가 다른 곳에 묻힌 것이 어느 여인에게는 다행스럽게, 어느 여인에게는 외롭게 되는 군요. 원래는 신촌에 있었는데 68년 이곳으로 이전되었다고 합니다.

 

 

숙종과 인현왕후, 인경왕후가 한데 모여 있는 명릉 

 

앞서 이야기 했던 장희빈의 반대편이 되는 것이겠지요.. 인현왕후와 숙종의 묘가 이곳 명릉에 있습니다.

 

 

아래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올라보면 두 무덤이 사이좋게 붙어 있습니다. 주변에는 문인석과 석호, 석양들이 주변을 감시하고 있어 이곳이 왕릉임을 새삼 느끼게 해 줍니다.

 

 

 

서오릉의 다섯 릉 중 가장 크고 웅대한 릉입니다. 그래서인지 입구 자체도 다르게 조성되어 있고요.

그렇다면 정작 동이, 숙빈 최씨는 어디에 묻혀 있을까요? 이곳에저 조금 떨어진 파주 광탄에 <소령원>이라는 곳에 묻혀있다고 하는데 상당히 아름다운 곳이라고 하네요.

 

이렇게 서울 인근의 왕릉을 구경하는 것도 즐거운 나들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