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적인 글은 영상으로 재탄생 될 수 있지만, 감동적인 영상은 글로 재탄생 될 수 없다. 수많은 선례를 살펴 보고 내린 결론이다. 이는 두 매체간의 태생이 다르기 때문인데, 글을 읽는 사람은 머릿속으로 영상화, 이미지화를 거칠 수 있지만 그 역순은 불가능 하기 때문이리라. 인기있는 TV시리즈물이 활자매체로 재탄생된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 성공은 극히 미지수인데, 얼핏 생각해도 EBS의 지식채널e 외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그마저도 원작을 넘는 감동인가 하는 점에는 다시 퀘스쳔 마크..
그러나 감동이 적다 하여 활자화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앞서의 지식채널e 역시 여러 편의 내용들을 한 개의 내용으로 구성하여 보다 곰씹게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고 과학과 같은 어려운 내용 같은 경우에는 보다 심층적인 내용전달이나 부가설명이 가능하다. 대표적인 예가 EBS의 수능 강좌다. 그렇다면 백년의 가게와 같은 교양물은 어떨까?
개인적으로 이 프로를 꼬박꼬박 챙겨보는 편은 아니지만 가끔(보통 주말에 하는 것 같더라) 나른한 오후에 보게 될 때가 있는데 상당히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이 담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가게는 스노우볼을 만드는 업체 였는데 고작(?) 장난감 같은 스노우볼을 100년이 넘도록 만들어온 주인의 끈기에 고개가 숙여졌다. 이 책에 실린 20개의 가게 역시 어느하나 뺄 수 없는 전통의 가게들이고 각자의 영역에서 최고의 장인정신을 기울여 온 가게들이다. 우산, 부채, 먹, 맥주, 코르크마개, 양초 등등.. 특히 체코의 하우스맥주 전문점 우 메드비드쿠는 5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거기까지..
각각의 가게들은 나름의 멋과 전통을 가지고 있는 것이 확실하지만, 동일한 구성과 흐름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교양방송의 특성상 모든 챕터들은 개성없이 획일화된 글들이 될 수 밖에 없다. 가게의 유구한 역사를 소개하고, 최고의 재료를 고르는 장인의 눈초리와 수고를 그려낸 후, 도제 시스템에 의해 엄격하게 관리되는 제품들. 변치 않는 고객 서비스와 전통을 잊지 않겠다는 CEO들의 다짐으로 마무리 되는 건 어느 방송이나 똑같다. 그럼에도 방송으로서 그 하나하나가 의미 있는 건 업종의 차이 때문인데 그것이 글로 옮겨 지면서 지루한 글들의 연속이 되어 버렸다.
Ctrl+C, Ctrl+V
후반부에 가면 업종과 가게이름, 몇년 된 가게인줄만 안다면 읽지 않아도 내용을 알 수 있을 정도로 획일화된 구성은 독자의 인내심을 바닥까지 긁어낸다. 전문 작가가 아닌 방송작가들로 구성된 필진(추측이다) 역시 방송언어로 글을 쓰는 바람에 지루함을 만들어냈다. 사람들은 방송작가들이 크리에이티브한 사람들로 알고 있지만, 그들의 크리에이티브는 기획과 방향인 것이지, 필력에 있어서는 거의 매뉴얼에 가까운 획일성을 지닌다. 20개의 스토리 있는 가게들을 발굴해 냈지만 정작 제대로 옮긴 한 가게만 못했다. 차라리 전문가 들이 4~5개의 가게를 선정해 분석해 내는 시도를 하는 것이 더 좋을 뻔 했다.
백년의 가게: 노포의 탄생
- 저자
- KBS 백년의 가게 제작팀 지음
- 출판사
- 샘터 | 2013-07-26 출간
- 카테고리
- 경제/경영
- 책소개
- KBS 우수교양프로그램 [백년의 가게]에서 엄선한 최고의 명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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