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수레의 책읽기

[김동리 단편] 교과서를 벗어나 읽으면 진짜 맛이 보인다.

슬슬살살 2013. 9. 17. 21:40

왠지 교과서에 나오는 인물들은 아주 옛날의 인물 같은 느낌이 많이 든다. 문학쪽으로는 황석영이나 김동리 같은 분들이 대표적인데 김동리 작가님의 경우 1995년에 돌아가셨단다. 내가 한창 교과서에서 무녀도를 배울 때에도 살아계셨다는 얘기다. 왠지 믿기지 않는 느낌?!! 알고보면 천재중 천재인데 193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입선을 시작으로 35년과 36년 중앙과 동아일보의 신춘문예에 연속 입선한다. 지금보다 훨씬 더 컸을 삼대 메이저 신문의 위상을 생각하면 후덜덜한 기록이다.

 

아무튼 이 김동리님의 글들을 서른도 중반에 접어드는 이제사 접했다. 원래 교과서에 나온 글들은 이상하게 외면하게 된다. 꼭 다 읽은 느낌이 들어서일까, 아니면 다시 쳐다보기도 싫은 것 같아서일까. 사실 그만큼 문학적으로 빼어나기 때문에 교과서에 실리는 따름인데, 교과과목이라는 족쇄가 선택을 애초부터 차단시키는건 아닌가 싶다. 등신불과 무녀도 정도는 알고 있었는데 화랑의 후예나 역마, 솔거 같은 단편들은 처음 접했고, 작품들 간의 스타일이나 주제의식이 확연하게 다른 경우가 많아 동일인의 작품이 아니라 생각되기도 했다. 한마디로 양면성을 가진 작가. 

 

<화랑의 후예>에서는 몰락하고 있는 조선의 모습을 어리숙한 황진사의 모습을 통해 투영하는데 아큐정전이 오버랩 되면서 우스꽝 스럽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다. 가난하고 고단한 민초의 삶을 그린 <산화>나 <바위>같은 작품들이 있는 반면 <무녀도>나 <등신불>, <솔거>에서는 종교와 예술혼에 대한 화두를 꺼내든다. <황토기>에서는 <뽕>과 같은 에로티시즘이 보였는데 웬걸, 역시나 동명의 에로틱한 영화로 개봉했었다. <밀다원 시대>와 <까치소리>에서는 문체가 급격하게 현대화 되기도 했고, 특히 <까치소리>에서는 간결하면서도 선정적인 사랑을 다룬다. 

 

우리의 현대소설이 그렇듯 실제의 지명이나 장소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곳이 많아 김동리 작품에 나왔던 곳들만 추려도 훌륭한 관광코스가 될 듯 하다. <솔거>에 등장하는 향일암과 불이암이 대표적인데 여긴 정확히 어딘지 찾지 못하겠다. 

 

시대가 시대였던만큼 희망찬 미래보다는 격변하는 시대의 불안함과 걱정, 민초들에 대한 동정이 많이 엿보이는데, 그 때문인지 작품들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함숨이 나오는 글들이 많아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상록수>같은 분위기를 좋아하다 보니 김동리의 단편들은 너무 무거운 편.  

 

읽은 작품목록

1. 화랑의 후예 / 2. 산화 / 3. 바위 / 4. 무녀도 / 5. 황토기 / 6. 등신불 / 7. 역마 / 8. 솔거 / 9. 늪 / 10. 밀다원 시대 / 11. 까치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