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도 있었고 기대도 있었다. 캐스팅도 화려했다. 과거에 성공했던 스타감독이 있다.
예전의 방식과 똑같은 방식의 전개다. 예측 가능하다.
믿어 의심치 않는 주인공이 있었다. 연구를 많이 했지만 혼자만의 싸움에 그쳤다.
그리고 실패했다.
실패했다란는 부분만 빼 놓고 보면 실망 투성이였던 월드컵과 비슷하다. 그리고 실패의 기준을 관객수가 아니라 내용으로 본다면 그것도 똑같다. 나 같은 일반 블로거 뿐 아니라 전문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좋은 소리가 나오지 않는 걸 보면.. 나올 때마다 연기의 신으로 추앙받았던 하정우조차 맥을 추지 못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걸까.
때는 조선의 암울한 시기다. 강화도에서 농사짓던 이가 왕이 될 정도였으니 얼마나 위정자들의 폐해가 막심했겠는가. 권세를 등에 없은 탐관오리들의 수탈이 극에 달했던 그 때. 그 때가 이 영화의 배경이다. 영화의 시작은 서부극과 무협지를 뒤섞어 놓은 듯한 연출로 시작한다. <놈놈놈>을 떠올리게 하는 BGM이 깔리면서 의적집단인 추설의 주인공들이 소개된다. 부정을 저지르는 상관을 베고 도적이 된 대호(이성민), 능력이 뛰어나도 과거에 붙을 수 없어 세상을 등진 태기(조진웅), 신분때문에 늘 괄시당하고 억울한 일만 당했던 천보(마동석), 그리고 먹고살기 위해 도굴을 하다 걸렸던 홍일점 마향(윤지혜)까지. 일부러 캐릭터를 잡기 위해 노력한 티가 역력하지만 실감나게 와닿지 않는다. 그만큼 인물 구성이 단조롭고 평면적이 었기 때문이다. 이경영의 땡초 역할이나 무식하고 힘이 센 천보, 벙어리이지만 놀이패 출신으로 몸이 날랜 ??(이름을 모르겠다)까지 전형적인 한국영화 캐릭터 패턴이다. 홍일점인 마향이 화살을 잘 다룬다는 설정도 이미 수없이 보아 왔다.
백정인 도치(하정우)가 조윤(강동원)과 대립한다. 조윤은 도치에게 살인을 지시하고 도치는 거부한다. 조윤은 도치의 가족을 몰살시키고 도치는 복수를 다집하며 군도집단에 들어간다. 조윤은 서자다. 서자의 설움을 가슴에 품은 악인이지만 무공에 있어서만큼은 조선팔도 열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뛰어난 인물이다.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조씨집안의 유일한 계승자가 되기 위해 조카와 형수를 죽이려 한다.
전부 똑같은 이야기는 찾기 어렵겠지만(찾으려면 있을법도 하다) 구분된 이야기들은 수많은 무협지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어차피 의적 이야기라는게 홍길동과 장길산의 시놉시스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사실 강동원의 역할이 중요했다. <군도>에서 예쁜 악마(?)로 거듭나 마향을 제치고 홍일점(?)으로 올라섰다는 농담에는 뼈가 있다. 강동원은 무지하게 나쁜 놈이어야만 했다. 그리고 영화 내내 피도 눈물도 없는 탐관오리가 되어 백성들을 탄압하고 눈쌀 하나 찌뿌리지 않는다. 그렇지만 결국 강동원은 나쁜놈이 되지 못했다. 그의 악행에는 아버지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이유가 있었고 서자출신으로 차별받았던 아픔이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조카를 살렸으며 나아가 자신에게 칼을 겨눈 백성들에게 해서는 안될 말을 던졌다. " 타고난 운명을 바꾸기 위해 생을 걸어본 자가 있거든 나서거라. 그 자의 칼이라면 받겠다." 진짜 나쁜놈이 되려면 그런 인간적인 대사를 읊어서는 아니됐다. 그 대사로 조윤은 사연있는 남자로 변신했고 상대적으로 가족을 잃은 하정우의 아픔은 묻혀 버렸다. 탐관오리 욕을 하다가 시대탓으로 넘어가 버리니 모두가 피해자가 되어버렸다. 관객들은 스트레스를 풀 대상이 없어져서 조윤이 죽을 때 카타르시스를 느끼지 못한다. 심지어 머리를 풀어헤친 강동원의 예쁜 모습에 가여움까지 느낀다. 도치의 억울함은 사라져 버렸다.(니들 왜싸웠냐?) <끝까지 간다>의 조진웅을 생각해 보면 훨씬 쉽게 이해가 된다. 앞 뒤 없이 무시무시 했던 조진웅의 연기는 상대적으로 이선균에 더 몰입하게 만들었고 조진웅은 점점 더 나쁜놈이 되어갔다. 악인은 그렇게 만들어야 했다.
멋있어서 망했어요. 사연있는 나쁜 남자여..
만약 강동원의 연기에서 무시무시한 악을 느낄 수만 있었어도 군도는 훨씬 재밌는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그리고 강동원은 몸값이 치솟았을 거다). 19세 관람가를 고집해서 잔인한 장면을 더 집어 넣을 필요도 있었다. 한마디로 악당을 못만들어 낸 것이 재미마저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 와중에서도 틱 증후군으로 자기만의 도치를 만들어낸 하정우가 돋보이긴 했지만 그 외에는 틀에 박힌 캐릭터들로 기시감만 느끼다 끝나버렸다. 그리고 기대받았던 강동원 역시 여전히 예쁜남자란 타이틀로 만족해야만 했다. 군도를 선택한 걸 보면 뭔가 변신을 기대 한 듯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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