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면, 완독을 하지 못했다. 조악한 편집, 불친절한 한자독음은 모래성 같은 교양 위에 쌓아 올리기에는 무리였다. 20세기 중반에 활동한 작가인데다 90년에 나온 판본을 읽기는 쉽지 않았다는게 변명이라면 변명이랄까.
임어당은 대만의 문화비평가로 우리나라의 이어령 교수와도 친분을 가진 바 있다. 이 당시의 지식인들이 이념, 산업화, 인간성이라는 주제로 씨름하고 있을 때 홀로 유머와 유유자적, 행복이란 꿈을 꾸었으니 한량이 따로 없다. 좋게 말하자면 노자에 가깝달까. 어쩌면 시대를 엄청나게 잘못 타고난지도 모르겠다.
유물론이니 인도주의니 초절주의니 다원론이니 그 밖에 모든 길게 이름 붙은 이즘이 있으나, 이런 이즘들이 내 자신의 철학보다 더 심원하지는 못하다고 생각한다. 인생이라는 것은 결국 먹는 일과 자는 일, 친구들과 만났다가 헤어지는 일, 친목회나 송별연을 베풀고 눈물을 흘리는 일, 웃는 일, 2주일에 한번 씩 이발을 하는 일, 화분에 심어놓은 꽃에 물을 주고, 이웃집 사람이 지붕에서 일하는 것을 바라보고 하며 그런 일들로 보내는 것이지만, 그러한 단순한 인생의 현상에 우리들의 관심을 일종의 아카데믹한 횡설수설로 꾸며대는 것은, 대학 교수들이 사상의 극도의 빈곤을 숨기기 위해 하는 술책에 지나지 않는다.
에세이 곳곳에는 그의 깊은 지식을 보여주는 흔적들이 묻어있다. 영어에 대한 이해나, 사서삼경으로 대표되는 중국 고전에 대한 통찰이 가볍지 않다. 다만, 중국 중심의 세계관이 깊이 자리하고 있는 점은 눈쌀이 찌뿌려 진다.
중국어는 세계에서 논리에 가장 가깝고 영어는 중국어에 가장 가까운 언어라고 할 수 있다.
그에 따르면 중국인은 세계 어느 누구보다도 개인적이고 자유로운 민족이다. 그런 자유분방함이 무질서로 연결되어 매너를 상실한 걸로 비춰지는게 문제지만...이 에세이에서 중국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라는 건 무리지만 적어도 한 지식인 만큼은 무위자연하며 행복론을 홀로 외쳤다는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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