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수레의 책읽기

[내 심장을 쏴라] 네 인생을 상대하는 놈은 누구냐? 너냐?

슬슬살살 2015. 7. 22. 22:29

정신병원에 가게 된, 그리고 갇히게 된 두 남자의 이야기다. 우정과 연민에 관한 이야기에 좌충우돌하는 젊고 유쾌함이 버무려진 정유정의 속도감 있는 이야기. 당연히 KTX를 탄 것 마냥 쭉쭉 읽혀 나간다. 전작인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보다는 정상(?)적인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보다 더 집요한 일인칭 시점을 제시한다. 이야기의 화자이자 관찰자인 이수명은 부친에 의해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어린 시절 엄마의 자살 이후 이명과 환청에 시달린 바 있고, 몇 차례 정신병원을 전전한 병력이 있는 이. 한번 본 것은 잊지 않는 기억력을 가지고 있지만 세상으로부터 정신병원 안으로 숨어버린 10대 청년이 이수명이다. 다른 한 쪽에는 진짜 강제로 갇혀버린 차승민이 있다. 이수명보다 서너살 위인 차승민은 부잣집의 배다른 막내로 상속권 분쟁 한 가운데 있다가 강제로 입원했다. 이수명이 세상으로부터 숨기를 원한다면 차승민은 자유를 갈망한다. 상속에는 관심 없고 오로지 안나프루나 상공을 날던 그 때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다.

 

이들을 보호하거나, 혹은 가둬놓은 이 정신병원 역시 보통의 곳은 아니다. 공정하지 못하고 거칠기만 한 세상의 모습을 더욱 압축해 놓은 꼴을 하고 있다. 겉으로는 멀쩡한 정신병원이지만 내면을 들여다 보면 썩을대로 썩은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우두머리라 할 수 있는 원장은 도통 보이질 않는다. 그 아래 원장의 조카라는 녀석은 오로지 환자들을 완력으로 제어하고 통제할 대상으로만 본다. 꼭 과거 안기부를 보는 것 만 같다. 그나마 인간적으로 보이는 최기훈 간호사 역시 군림하려 드는 권력임에는 다름이 없다.

 

오히려 인간성이 살아있는 이들은 입원해 있는 환자들이다. 이들은 한가지씩의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적어도 서로를 보듬고 자신의 이익을 우선하지는 않는다. 바보처럼 순종하기는 하지만 누군가를 공격하거나 아프게 하는 일은 없는 편이다.

 

사회의 축소판인 이 병원이 두 젊은이 이수명과 차승민이 입원으로 흔들리기 시작한다. 나가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차승민은 점점 약기운에 탈출 의지를 잃어가고 심지어 실명에 이르게 된다. 이수명은 차승민을 위해 정신병원 곳곳을 누비변서 간접적인 도움을 주지만 정작 자신은 체제에 굴복한 상태다. 이런 이수명이 점점 자신에 대해 자각하고 극복해 가는 과정이 무엇보다도 잘 나타나 있는게 이 작품의 매력이다. 일인칭 시점에서 마치 차승민의 일들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진짜는 수명 내면의 변화다. 세상으로 나아갈 준비. 맞설 준비를 해 나가는 모습은 읽는 도중에는 모르지만 어느덧 다가온다. 어머님의 죽음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면서 세상으로부터 도망친 젊은이가 살아날 의지를 가져나가는 걸 실시간으로 지켜 보는 모습이 얼마나 뿌듯한지.. 

 

가끔 궁금했어. 진짜 네가 누군지. 숨는 놈 말고, 견디는 놈 말고, 네 인생을 상대하는 놈. 있기는 하냐?

 

그렇지만 차승민이 승민에게 던지는 메세지는 수명에게만 던지는 게 아니다. 거친 세상으로부터 도피하고 숨어버리고 싶어하는 이들. 자신과 타협하면서 그냥 그렇게 사그러드는 세대에게 던지는 일갈이다. 나온지 꽤 된 소설이지만 지금 세태를 생각해 보면 꼭 읽어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딱딱하냐면, 완전 반대다. 90년대에 유행하던 유쾌한 청춘소설의 느낌을 답습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주제의 흐름, 주인공의 의식변화를 놓치지 않고 일관되게 끌고가는 작가의 힘이 느껴지는 수작이다. 소설적인 재미는 기본. 통쾌함과 먹먹함, 수명과 승민에 대한 그리움이 여운으로 남는 작품이었다.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최근 영화화되기도 했지만, 소설의 치밀함을 따라가기는 무리였나보다. 하긴, 수명의 시각으로 바라본 디테일 한 정신병원과 물고 물리는 사건을 제3자의 카메라로 담는 게 쉽지는 않았으리라. 이 책은 두고 두고 언제 어느쪽을 펼쳐 보더라도 그자리에서 푹 빠져 들어갈 수 있는 그런 소설이다.

 

 


내 심장을 쏴라

저자
정유정 지음
출판사
은행나무 | 2009-05-27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2009년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강렬한 흡인력을 갖춘,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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