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로맨스 소설이라 생각했던 내 무식함이 한스러울 뿐이다. 이 소설은 인간의 생에 대한 치열한 고찰이다.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걸까"
대학에서 명망있는 언어학자로서 칸트와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그레고리우스. 그 앞에 우연같은 운명이 찾아온다. 울고 있는 포르투갈 여자를 만나고, 그 여자가 그레고리우스 이마에 립스틱으로 전화번호를 남긴다. 그녀의 포르투갈어에 알 수 없는 기분이 든 그레고리우스는 헌책방으로 가 포르투갈 책을 산다. 이 책이 그레고리우스의 운명을 바꿀 책 아마데우스 알메이다 프라두의 '언어의 연금술사'다.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기본 구조는 그레고리우스가 이 책 한 권을 들고 프라두의 일생을 쫒는 이야기다. 왜 그래야만 하는지는 궁금해 하지 말자. 그레고리우스 조차 자신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알지 못하니. 다만, 이유없이 강렬한 충동이 자신을 지배할 때가 있음을 인정하자. 대부분은 이성으로 버티지만 세상에는 감성의 발현을 억누르지 못할 때가 있는 법이다.
그레고리우스는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리스본에서 프라두의 주변 인물들을 만난다. 프라두는 의사였으며, 천재적인 혁명가이자 반독재운동을 했던 인물이다. 언어에 대한 깊은 이해는 물론이고 사람을 끄는 카리스마까지 가지고 있었던 입지전적인 사람.(실존 인물은 아닌 듯 하다) 그가 남긴 저서 '언어의 연금술사'는 가상의 책이지만 읽는 내내 진짜 나온게 아닌가 찾아보게 만드는 마성이 있다. 저자는 가상의 인물 프라두를 통해 인생에 대한 고찰들을 쏟아낸다.
그레고리우스가 프라두의 흔적을 되짚어 나가면서 프라두와 가까웠던 인물들 역시 프라두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된다. 프라두가 남긴 글을 통해서 그를 이해해 나가는 그레고리우스, 그레고리우스의 방문으로 프라두에 대해 몰랐던 사실을 깨닫는 프라두의 지인들. 그레고리우스는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프라두의 존재와 진실을 지인들에게 전하는 것이다. 개인을 이해할 수 있는 건 가까운 사람이 아니라 생판 남일지도 모르겠다.
현학적인 내용이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고 스릴러적인 면도 가지고 있어 흥미진진하다. 가상의 책 '언어의 연금술사'는 독자에게 깊은 영감과 명상의 기회를 준다. 존재의 의미,철학적인 관념적인 자아를 잠시나마 떠올리게 만들어주는 책이다. 인간의 삶이 유한함을, 유한하기 때문에 무언가 해야 함을, 언젠가는 모든것을 내려 놓고 본능의 이끌림에 귀울임이 필요함을. 번역이 되었음에도 반짝반짝 빛나는 문장들은 아름다움을 넘어 매혹적이기까지 하다. 적어도 20대와 30대, 무언가 새로운 삶이 시작되기 전 이 책을 접한다면 인생이 바뀔지도 모르겠다.
어디로 가든, 당신도 야간열차를 타야 할 때가 온다. 당신은 어떤 장소를 떠나면서 당신의 일부분을 남긴다. 떠나더라도 당신은 반드시 그곳에 남는다. 낮선 정거장의 플랫폼에 발을 딛고 역사에 풍기는 냄새를 맡으며, 당신은 겉으로만 먼 곳에 도착한 것이 아니라 마음속 외딴 곳에 왔음을 깨달을 것이다. 그 먼 곳을 돌아 다시 찾아 왔을 때, 당신이 발견하는 것은 이미 예전의 당신이 아닌 당신일 것이다.
'열수레의 책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내가 결혼했다] 발칙한 상상력으로 질투를 경험하다. (0) | 2015.09.29 |
---|---|
[오늘의 거짓말] 자신에게 닥쳤을 때 진정으로 배운 것처럼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0) | 2015.09.28 |
[CEO가 되는 길] 나태해진 나에게 영감 불어넣기 (0) | 2015.09.12 |
[피라니아 이야기] 원하는게 있다면 달라고 요구하라 (0) | 2015.08.30 |
[다크문] 밸런스 좋고 읽기 쫄깃한 1.5세대 판타지 (0) | 2015.08.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