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수레의 책읽기

[아내가 결혼했다] 발칙한 상상력으로 질투를 경험하다.

슬슬살살 2015. 9. 29. 18:45

대한민국에서, 아니 이 세상 대다수의 나라에서 중혼은 불법이다. 일부다처제를 인정하는 경우는 있지만 일처다부제는 거의 없으며 있다 하더라도 비문명화된 소수 종족의 문화에 다름 아니다. 손예진 주연의 영화로까지 만들어진 이 소설은 이러한 중혼에 대한 상상력에서 출발한다.

 

아내가 결혼했다. 이게 모두다. 나는 그녀의 친구가 아니다. 친정식구도 아니다. 전 남편도 아니다. 그녀의 엄연한 현재 남편이다. 정말 견딜 수 없는 것은 그녀 역시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내 인생은 엉망이 되었다.

 

스토리는 단순하지만 내용은 그렇지 않다. 불륜을 소재로 하는 이야기는 존재했지만 이렇게 아내가 대놓고 중혼을 요구하고 그걸 들어주는 남편이라니. 게다가 그 모든 것이 사랑이라는 이유로 이뤄진다. 아내는 두 명의 남자를 똑같이 사랑해서, 남편은 아내를 너무 사랑해서.

 

중혼을 다루고 있다고 해서 자극적이거나 섹슈얼한 부분에 포커싱 되어 있지는 않다. 물론 두 세번의 베드씬은 자극적인 편이지만 그게 더 사람을 애닯게 한다. 덕훈의 애인이자 아내가 되는 인아는 모든 면에서 완벽한 여인이다. 일도 프로인데다 잠자리는 쉐도우 스트라이커라는 표현이 적합할 정도. 요리면 요리, 청소, 빨래 같은 가정일 또한 완벽하며 싹싹하고 매력적인 여인이다. 한가지 흠이 있다면 자유연애주의자라는 것. 그 모든 것을 인정하고 결혼하기로 한 덕훈에게 시련이 닥치니 바로 또다른 남자 재경과의 중혼을 인아가 바란다는 점이다. 사회적 통념을 넘어 내 아내를 빼앗기는 듯한 요상한 느낌과 도덕적인 저항이 소설 내내 나를 괴롭힌다. 위에서 기술한 자극적인 베드씬은 이런 저항을 더 강하게 만드는 일종의 장치다. 독자가 덕훈에게 몰입하도록 만드는 것. 덕분에 충분히 덕훈이 된 독자들은 질투의 짜증을 온몸으로 소설의 기본인 걸 알면서도 짜증나도록 질투가 난다.

 

박현욱이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건 무엇인가. 중혼이 문제가 없다는 사실? 그건 아닐꺼다. 이 소설에서 중혼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통념적인 합의가 합당한 방식으로 깨어질때 사람이 얼마나 당황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대한 접근이 이 소설이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인 이해가 어느정도 성숙해져 있지만 불과 10여년 전만해도 TV에서 이런 문제를 말하는 것 조차 터부시 되는 시대였다. 거꾸로 생각해 보면 중혼 역시 안될게 무어냐라는 담대한 문제제기는 아직 생각해 볼 준비조차 하지 못한 독자들에게 먹이는 어퍼컷이다. 중혼의 가치, 정당성을 떠나 통념에 대한 과감한 쿠테타를 우리는 받아들일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인 것이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독자들에게 이 쿠테타는 실패했으리라 생각한다.

 

독자의 이해는 구할 수 있었지만 공감은 이끌어 내지 못한 이 소설이 끝까지 재미있었던 건 구성과 문장에 있다. 톡톡 튀는 문장, 축구와 비교 교차해 나가는 방식의 스토리 구성이 머리속을 가볍고 경쾌하게 만든다. 그렇게 만들어진 틈새에 인아의 매력을 들이 붇는데에는 당췌 당해 낼 자신이 없다. 그리고 인아의 중혼 선언, 재경의 등장, 아이의 탄생까지.. 숨 쉴 틈 없이 몰아치는 혼돈 속에서 어느덧 질투는 잊고 인아만을 바라보는 덕훈의 모습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소설은 공포, 감동, 슬픔, 기쁨 등 여러가지 감정을 전달한다. '아내가 결혼했다'가 전달하는 감정은 질투다. 특별한 질투의 경험이다.

 

꿈이 이루어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그때까지도 놈을 떼어내지 못한다면 어쩌면 네 사람이 모두 가게 되는 달갑지 않은 사태가 생겨날지도 모르겠다.
바티스투타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것이 무너져도 우리에겐 항상 축구가 있다." 


아내가 결혼했다(제2회 세계문학상 당선작)

저자
박현욱 지음
출판사
문이당 | 2006-03-1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 책상태 - 초판 8쇄 발행본 - 겉 : 상태양호 - 속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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