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시대에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었다는 발상은 19세기에 당시 진보 사상을 조장하기 위해 날조된 생각이다. 우리는 이런 오해의 근거를 주로 미국인 소설가 워싱턴 어빙에게서 찾는다. 왜냐하면 그가 1828년에 출간한 <크리스토퍼 콜롬버스의 인생과 항해사>에서 콜럼버스가 그 당시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졌던 지구가 평평하다는 생각에 용감하게 맞선 사람이라는 발상을 꾸며냈기 때문이다.
몇몇 단편적인 정보만 가지고 중세의 우주관이 미개했다는 건 전혀 사실이 아니다. 중세인들은 현대인 못지 않게 천문과 지리에 대한 방대한 정보를 담고 있었다. 중세 지도는 지리적 사실만 담겨있는게 아니다. 종교, 가치관 같은 세계관까지도 담겨있다. <중세, 하늘을 디자인하다>는 이런 세계관과 지도를 설명하는 책이다. 어렵고 지루한게 좀 문제기는 하지만.
중세는 두개의 세계가 있다. 이슬람과 유럽.1 두 세계는 각각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지만 내용은 같다. 종교와 상상. 기독교의 지도에는 에덴동산이 그려져 있고 이슬람의 지도에는 와크와크족이라는 전설속의 종족이 사는 곳이 그려져 있다.
그렇다고 이 지도들이 단순히 상상력의 산물만은 아니다. 이 지도들은 적어도 개략적인 도시의 위치들은 그려져 있어서 여행의 길잡이 역할은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우리가 지하철 노선도를 볼 때처럼 거리는 알지 못해도 순서만으로 위치를 가늠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예쁜 고지도들과 사진자료들이 눈길을 끌긴 하지만 대중서라기 보기엔 다소 난해한 책이다. 서술방식이 논문처럼 딱딱한데다 지도에 대한 설명에 너무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그렇지만 예술작품만큼이나 예쁜 고지도들을 감상하는 재미만큼은 쏠쏠하다. 확실히 전달하고픈 정보만 전달하는 지금의 지도보다는 중세의 지도가 훨씬 아름답고 미적이라는 사실 정도만 느껴도 충분하다.
- 동양이 빠진 건 그냥 넘어가자. 유럽은 아직까지도 동양을 한 수 아래로 보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중세를 무시하듯이.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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