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하루를 소설로 쓴다면 어떤 내용이 담길까. 얼핏 생각하기로는 한장도 채우기 힘들 듯 하다. 뭔가 아주 특별한 하루인 경우엔 짧은 단편 정도는 남길 수 있겠다. '운수 좋은 날'처럼. 그렇지만 어떤 이에게는 하루 하루가 아주 길고 특별할 수가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이반의 하루처럼.
이반은 수용소 생활 7년차에 접어드는 중견 수감자다. 평범한 농부였지만 독일의 스파이로 몰려 이곳 수용소에까지 왔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다. 여기 끌려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무얼 잘못했는지 모르는 게 대부분이니까. 수용소 생활은 배고픔과 추위와의 싸움이다. 적은 배급량, 영하 40도에 가까운 추위(영하 40도 아래가 되면 작업을 쉬기 때문에 그 이하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기본이다. 인간적인 존엄성 따위는 없어진지 오래다. 아직까지 팔팔한 인간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건 그들이 아직 초짜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7년간 이 지옥에서 살아남은 이반의 입장에서 보면 먹는 것보다 중요한 건 없다. 그런 이반에게 오늘 하루는 최고의 날이다. 점심에는 그릇 수를 속여 두 그릇을 먹었고, 체자리가 소포를 받은 덕분에 그의 저녁이 이반의 차지가 되었다. 물론 한파 속에 30분동안 줄을 서 있어야 했지만. 물론 하루 종일 추위에서 떨면서 강제 노역을 했고 이 짧은 기간동안 적어도 세 명은 죽거나 죽음에 가까운 심판을 받았어도 이반은 행복했다.
지금 그의 손에는 400그램의 빵과 200그램의 빵이 있다. 매트리스 안의 빵도 200그램은 될 것이다. 이 이상 뭘 더 바라랴!
게다가 작업장에서는 새 신발을 만들 수 있는 줄칼을 훔펴서 반입할 수가 있었고 체자리에게는 비스킷과 소시지까지 얻어먹었다. 영창에 들어가지도 않았고 사회주의 단지로 추방되지도 않았다. 이반의 오늘 하루는 완벽했다.
유쾌하고 어수룩한 이반의 하루를 들여보고 나면 이반은 결코 알 수 없는 서글픔이 느껴진다. 오로지 독자만이 이 생활을 비참하다고 생각할 뿐 역설적이게도 정작 이반은 하루하루가 행복할 따름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소설로 수용서 안에서의 비참한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다. 무지막지했던 소련의 당시 분위기와 시대상, 인간의 존엄성 따위는 바닥으로 던져버린 스탈린의 모습을 길지 않은 이 소설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솔제니친은 비참한 수용소 안의 모습을 덤덤하고 풍자적인 모습으로 그림으로써 독자를 휘어잡는다. 독재 치하의 비참함을 전달하려는 목적 역시 백번 달성한 채로.
이렇게 하루가, 우울하고 불쾌한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거의 행복하기까지 한 하루가 지나갔다. 이런 날들이 그의 형기가 시작되는 날부터 끝나는 날까지 만 10년이나, 3653일이나 계속 되었다. 사흘이 더해진 것은 그 사이에 윤년이 끼었기 때문이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 저자
- 알렉산드르 이자에비치 솔제니친, 솔제니친 지음
- 출판사
- 문예출판사 | 2002-11-01 출간
- 카테고리
- 소설
- 책소개
- 1970년 노벨수상작가 솔제니친의 처녀작이자 대표작. 러시아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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