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적은 없지만 <맨발의 겐>이라는 일본의 유명한 만화가 있다. 73년에 발표한 핵전쟁을 소재로 하는 일종의 자전적 만화인데 만화왕국 일본에서도 최초로 시도됐던 일종의 고발만화였다고 한다. 작가는 '나카자와 케이지'. 원폭 투하 당시 히로시마에서 살아남은 후 그 광경과 들었던 생각들을 후에 작품으로 남겼다. '나의 유서'라는 어미가 붙은 이 책은 나카자와가 세상에 남긴 유서다. <맨발의 겐>이라는 걸작 위에 자신의 생각을 좀 더 덧붙여서 펴냈다.
'핵'사고의 위험성과 무서움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직접 경험한게 아닌 이상 추상적일 수 밖에 없다. 때문에 65년 전 히로시마 한가운데서 핵폭발을 몸소 경험한 나카자와가 풀어놓는 이야기는 충격적이다. 자료사진 조차 없는 지금 그의 기억에서 재탄생한 만화는 핵의 공포를 전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오히려 추상적으로 그려진 작품에서 더욱 무서움을 느끼게 된다. 예를 들면 옷이 늘어진 줄 알았더니 피부가죽이 늘어져 있었다는 둥, 몸 속의 구더기를 파내고 있던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는 끔찍하다 못해 처절하다. 하기는 현대라고 다르겠는가. 핵이 폭발해 수도, 전기, 통신, 교통이 끊기면 그때나 지금이나 석기시대임은 변함 없다.
나카자와는 한국인에 대한 차별을 반대하고, 핵전쟁의 원인이 된 미국과 일왕을 비난한다. 실제로 이때문에 출판사를 쉽게 구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맨발의 겐' 은 불온 서적으로 지정된 적도 있다. 그럼에도 죽기 직전까지 반핵·반전 메세지를 전한 나카자와는 살아있는 지식인이자 박애주의자의 표상이다. 아직까지도 일본 하면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이 많다. 특히나 아베 정권에서 보여준 극우 행동들이 주변국에 나쁜 인식을 남기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모든 어른이 '어버이 연합'이 아니고 모든 청년이 '일베'가 아니듯 모든 일본인이 극우주의자는 아니다. 우리는 이런 평화주의자 일본인의 생각에 귀 기울이고 적극적인 지지를 해야 한다.
<맨발의 겐>은 훌륭한 작품이지만 그림체가 잔인하고 눈쌀 찌뿌려지는 내용이 많다. 그럼에도 학생들은 반드시 읽어 보아야 한다. 전쟁과 핵에 대한 무서움을 정확히 인식하는 건 어릴 때부터 필요하니까. 성인인 나조차도 이 책을 읽고 북한의 핵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핵무기를 가진다는 것. 그리고 핵을 다룬다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막중한 책임을 지는지 시민이 알아야 한다.
'열수레의 책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혼불] 글 속에서 시대를 뛰어넘는 미완의 대작 (0) | 2015.11.05 |
---|---|
[유혹하는 글쓰기: 스티븐 킹의 창작론] 세계 최고 소설가의 창작노트 훔쳐보기 (0) | 2015.10.20 |
[중세, 하늘을 디자인하다] 우리가 미처 몰랐던 아름다운 중세의 지도 (0) | 2015.10.10 |
[소설 토정비결] 가벼운 가상 역사 속에 愛民을 담다 (0) | 2015.10.01 |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행복한 하루로 그려낸 비참한 스탈린 시대의 수용소 생활 (0) | 2015.09.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