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잘 쓰고 싶다. 배울 수 있다면 돈을 주고서라도 배우고 싶다. 수많은 글쓰기 책이 있지만 대다수는 문장론에 그칠 뿐더러, 수많은 글쓰기의 형태 대로 구분해서 이러이러하게 구성하면 된다는 겉핥기가 대부분이다. 정작 내가 쓰고 싶은건 그게 아닌데도. 이 책은 글쓰기에 대한 책이다. 정확히는 소설. 스티븐 킹이 말하는 소설 창작법이라면 돈주고서라도 배울만 하지 않은가.
글쓰기에 관한 책이지만 대부분은 스티븐 킹의 경험에 대한 얘기다. 얼마나 치열하게 글을 썼는지, 어떻게 데뷔하게 되었는지, 자신은 창작할 때 어떤 방식으로 어떤 생각을 가지고 하는지.. 저술의 기술을 배우고자 했다면 이 책을 봐서는 안된다. 이 책은 어디까지나 창작에 대한 스티븐의 생각을 늘어 놓았을 뿐이다. 극히 주관적인 내용이므로 모든 소설가가 이런 식으로 작업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다시 얘기하지만 킹은 킹의 방식이 있고 이 책은 그 방식에 대한 소개일 뿐이다.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유혹하는 글쓰기>는 훨씬 그럴싸하고, 따라하고 싶게 만들며 금방이라도 소설 한편을 완성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충동을 부여한다.
머리말과 후기를 제외하고 총 3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글의 절반은 특이하게도 스티븐 킹의 이력서다. 13살부터 소설을 썼던 스티븐 킹의 재능부터 시작해서 <캐리>가 출판되던 때의 감동까지, 킹의 팬이 아니더라도 드라마틱한 스토리는 그의 소설만큼이나 긴장감 넘친다. 정작 소설은 쓰는 기법보다 마음가짐에 달려 있음을 알게 해주는 장이다. 본격적인 창작론으로 넘어가기 전에 '연장통'이라는 두번재 단락이 있다. 여기서는 적어도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소설가의 소양을 얘기하는데 영어권과 한글은 엄연히 다르니 참고만 하면 된다. 요약하면, 줄일 것. 간결할 것. 문법에 맞출 것. 쉼표 쓰는 법. 등등등.
169페이지를 넘어가서야 '창작론'에 해당하는 항목이 나온다. 어디까지나 스티븐 킹 개인의 경험칙을 문장화 해 놓은 거지만 대가의 조언이다보니 허투루 넘어가지지 않는다. 중요하지 않은게 없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한 걸 억지로라도 추려 본다면,
내가 보기에 소설은 장편이든 단편이든 세가지 요소로 이루어진다. A지점에서 B지점을 거쳐 마침내 Z지점까지 이야기를 이어가는 서술(naration), 독자에게 생생한 현실감을 주는 묘사(description),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말을 통하여 그들에게 생명을 불어 넣는 대화(dialogue)가 그것이다.
플롯이 없이 서술과 묘사, 대화만으로도 충분히 값진 소설을 만들 수 있다. 킹의 소설은 '만약에'에서 출발한다. 만약 흡혈귀들이 뉴잉글랜드의 어느 작은 말을 습격한다면, 만약 젊은 엄마와 그 아들이 미친개에게 쫒겨 고장난 자동차 안에 갇힌다면....
킹의 방식은 어린아이가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것과 같은 이치다. 미리 플롯을 짜 놓는 것이 아니라 만약이라는 가정에서 떠오른 생각을 시간 순서대로 전개시켜 나간다. 단점이라면 소설의 결말을 쓰는 사람 조차 알 수 없다는 것. 장황하게 늘어지면서 알 수 없는 이야기가 될수도 있다는 점 등인데 이런 건 훈련으로 극복할 수 있다. 킹은 작중 캐릭터를 만들어 놓고 그의 원고지 안에 자유롭게 풀어 놓는다. 어차피 퇴고를 통해 문장을 바로잡고, 주제와 비유를 만들어 나가는 '디테일한 미세 조정'을 거칠테니 킹이 해야 할 일은 하나다. '만약'으로 시작한 이 이야기를 아내에게 들려줄 수 있도록 만들어 내는 것.
일필휘지. 한방에 쭈욱 써내려 갈 것 같지만 스티븐킹은 퇴고와 수정에 대해 누구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모든 글쓰기 책의 공통점이 있다면 글을 줄이는 거다. 글을 줄일 것. 말은 쉽지만 무지하게 어려운게 줄이는 거다.
수정본=초고-10%
이건 스티븐 킹이 잡지사에 투고할 때 편집자가 남긴 메모이자 모든 글쓰기의 핵심이다. 줄여라.
엉덩이로 글을 쓴다는 얘기가 있다. '스티븐 킹'같은 작가들은 좀 천재성(?) 같은게 있어서 한방에 좋은 글을 쓸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킹은 꾸준히, 정해진 시간에 계속해서 쓸 것을 주문한다. 그러다 보면 그게 직업이 되고 정확해지고 쌓이고 쌓여 어느 순간 작품(?)이 된다. 물론 노력만 한다고 작가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노력 없는 소설은 불가능 하다. 적어도 켜켜히 글이 쌓여 가야만 볼만 한 글이 나오는 법이다. 평범한 작가가 위대한 작가가 되기까지 노력이 불필요 할 수 있지만 적어도 노력은 재능있는 사람을 평범한 작가로는 만들 수 있다.
이 책의 가장 좋은 점. 실용서로 분류될 수도 있을 만한 책임에도 재미있다. 킹의 트레이드마크인 시니컬한 위트와 조크는 이같은 에세이에도 곳곳이 박혀있다. '빌 브라이슨'만큼이나 유쾌한 그의 작법 노트만 봐도 글쓰기의 기본은 배울 수 있을 듯 하다. 10년이 넘은 에세이의 리뷰가 지금까지도 올라오고 있는 지경이라면 수준은 말할것도 없겠지. 궂이 소설가를 꿈꾸지는 않더라도 재미있는데다 유용하기 까지 하다면 남는 장사 아닐까. 언젠가 내가 본격적으로 글을 쓸 일이 있다면, 다시 한번 꼼꼼히 이 책을 훝으리라. 그리 멀지 않았길 바란다.
'열수레의 책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데미안] 세계에 대한 투쟁 후에나 찾을 수 있는 자아 (0) | 2015.11.09 |
---|---|
[혼불] 글 속에서 시대를 뛰어넘는 미완의 대작 (0) | 2015.11.05 |
[나의 유서, 맨발의 겐] 핵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자 (0) | 2015.10.11 |
[중세, 하늘을 디자인하다] 우리가 미처 몰랐던 아름다운 중세의 지도 (0) | 2015.10.10 |
[소설 토정비결] 가벼운 가상 역사 속에 愛民을 담다 (0) | 2015.10.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