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을 전 후 해서 잠깐 장르소설계에 밀리터리 바람이 불었었다. 만화로는 이현세의 남벌과 북벌이 히트치고 김진명의 <하늘이여 땅이여>가 베스트셀러 자리에 오르면서 필연적으로 민족주의를 강조할 수 있는 성격의 책들이 조망 받았다. 대표적인 작품이 <데프콘>시리즈. 한일전쟁, 한국전쟁의 뒤를 이어 미국까지 집어삼킨다는 군국주의의 끝판왕 다운 설정에도 불구하고 꽤나 인기를 얻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90년대부터 북한은 이미 군사력 규모에서 상대가 되지 않았는데다 일본이라는 감정적인 주적이 있기 때문에 늘, 가상에서 상대하는 적국은 일본이다.
<산을 미는 강>에서의 주 적국은 중국이다. 통일 한국과 중국의 대결. 엄청난 경제발전 속도를 무기로 동북아의 패권을 장악하려는 중국과 이 전쟁 속에서 이익을 찾으려는 일본과 미국. 이 작품은 단순히 재래전만을 다루고 있지 않다. 동북아를 둘러싼 국제 정세 대부분을 다루면서 외교적인 상황을 진단하는데 들이는 공도 상당하다. 티벳과 위구르의 독립운동, 러시아의 정치적 혼란등을 잘 버무려 거대한 현대전을 중국과 한국의 대결로 압축해 놓았다.
물론 아무리 소설이라도 중국과의 재래전이란게 가능할리 없다. 방어전이라면 세계3~7위의 재래무중집단인 남북한이 중국을 충분히 막아낼 수도 있겠지만, 고토 회복을 목적으로 하는 전면 점령전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주인공 보정과 적국 페널티가 상당하게 들어간다. 먼저, 한국군 보정. 통일한국은 예비군과 애국심에 대한 보정을 엄청나게 받는다. 물론 강제징병제인 대한민국과 북한 모두 천만이 넘는 예비군을 보유하고 있고 훈련량도 수준 높지만 그 모두가 애국심에 불타오르는 건 아닐진저, 소설에서는 스파르타와 같은 군사국가로 그려진다. 반면, 중국은 4~5개의 군벌로 쪼개진다. 게다가 티벳, 러시아, 위구르가 모두 한국의 지원으로 독립운동을 시작해 병력을 쪼개는 페널티를 받는다.
세계 경찰인 미국의 역할이 중요한데, 캘리포니아에 엄청난 대지진으로 내수를 살려야 하는 목표와 함께 동북아시아의 지배력을 일시적으로 상실한다. 뭐 이건, 충분히 가능할 수 있다. 아무튼 이 상황에서 치밀하게 준비된 전쟁 시나리오는 흘러가고 한국군은 수퍼 지상군을 동원, 일시에 북경 앞까지 밀고 나간다. 이어지는 고착과 일진일퇴, 서해안을 사이에 두고 벌아지는 상륙전, 전술핵의 사용까지 진짜 전쟁을 보듯 실감나는 장면이 한 둘이 아니다. 각 분야별로 전문 필진이 나뉘어져 있는 것도 재미있다. 밀리터리의 핵심은 무기체계의 정확도라 할 수 있는데 덕후의 특성상 주 관심 분야가 지상군, 해군, 공군, 특수전 등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이걸 나누어서 씀으로서 각국의 무기체계를 그대로 시뮬레이션 하는 효과를 보였다.
반대로, 전문 무기 영역에 많은 노력을 할애하다보니 정작 소설적인 재미, 예를 들면 전쟁을 맞이하는 인간 개개인의 스토리, 집단 패닉, 문명의 종말이라는 전쟁의 경각심 같은 부분을 모두 놓쳤다. 그냥 작전도를 두고 하는 도상 시뮬레이션을 글로 옮긴 것처럼 보인다. 소설적인 묘사도 불성실해서 이런 분야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질려버릴 만큼 지루하다. 그것도 16권이나 된다는 무시무시함과 함께. 결론 역시 수구, 군국주의, 패권주의, 민족주의 이상을 넘지 못해 마치 일본이 된 것이 아닌가 착각이 들기도 한다. 어떤 미사여구를 붙여 놓더라도 전쟁 승리를 빌미로 고토회복, 국격의 성장 등을 운운하는 건 그 나라의 수준이 전범국가를 벗어날 수 없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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