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는 것, 보류해 두는 것, 암시만 하고 미루어 짐작해야 하는 것, 바로 이것이 유디트 헤르만의 작품에 깔린 매력이다. 보고 형용할 수 있는게 아니라 볼 수 없는 것, 말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이야기. 다 해결해 주는 언어가 아닌 그 반대의 자제와 절제, 침묵의 언어로 환상 없이 대면하려는 태연한 시선.
(옮긴이의 말 中에서)
백마디 리뷰보다 옮긴이의 말에서 발췌한 이 두 단락이 가장 정확한 표현이다. 태연한 고독. 읽으면서 내내 제임스 설터가 떠올랐다. 흐름이 없되 장면을 포착한 미문들. 익숙한 형태가 아닌지라 쉽사리 지루해지던 단편들. <여름 별장, 그 후>도 비슷하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비유와 상징을 바른 미문들 사이에서 쓸쓸함을 느낀게 나 뿐만은 아니었나보다. <은교>를 연상시키는 <헌터 톰슨 음악>같은 작품은 그나마 익숙한 느낌이지만 <발리여인> 같은 작품은 거꾸로 너무나 어렵게 다가온다.
<여름 별장, 그 후>에는 10편의 작품이 실려 있는데 하나하나가 모두 고독하고 쓸쓸하다. 군중속에서 느끼는 고독이 아니라 완전히 세상과 단절된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하나같이 세계속에서 완전히 '홀로' 된 사람들. 이런 저런 이유로 바깥과 가까스러운 연결선을 쥐고 있지만 불안함은 찾아 볼 수 없다. 오히려 그 하나의 선마저도 언제든 놓을 수 있다는 관조가 더 고독해 보인다.
누군가가 나에게 '읽을 만한 것'을 추천해 달라면 이 책은 절대 거기에 끼지 못 할 것이다. 그러나 하루키의 단편이나 제임스 설터의 미문을 좋아하는 여성이 '괜찮은 것'을 주문한다면 딱 적당하다. 어떤 때에는 재미보다 사색이 필요한 순간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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