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수레의 책읽기

[신도 버린 사람들 - 나렌드라 자다브] 신을 섬기면서 신에게 버림받은 자, 스스로를 구원하다.

슬슬살살 2016. 2. 15. 23:00

노예제도는 사라졌다지만 지구상에는 여전히 다양한 차별이 존재한다. 인종차별, 성차별, 빈부의 차별, 종교의 차별까지. 차별은 보통 겉모습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피부색이 달라서, 인종이 달라서, 믿고 있는 종교가 달라서, 가지고 있는 집과 차가 달라서. 그런데 나름의 이유와 달리 민족, 인종, 종교가 모두 같은데도 차별을 하는 집단이 있다. 그냥 차별이 아니라 그들이 만진 물건을 집지도 않을 정도다. 이만하면 눈치 챘으리라. 인도의 카스트 얘기다. 학창시절 브라만으로 시작해 수드라로 끝나는 이 말도 안되는 신분제에 대해 배운적이 있다. 심지어 여기에 끼지도 못하는 이들이 있으니 인도의 1/6의 인구, 약 2억 5천만명에 해당하는 이들이 속한 아웃카스트, 불가촉 천민이다. 물론 1950년 법적으로 카스트제도는 없어졌지만 글자만 없어졌을 뿐 인도인의 삶에는 아직 카스트 제도가 살아 있다. 이 책은 이 카스트제도를 이겨내고 국제적인 경제학자가 된 나렌드라 자다브의 이야기다. 정확히는 카스트 제도에 저항해 아이들을 길러낸 그의 아버지, 다무의 삶이다.

 

이야기에 앞서, 카스트제도를 보는 인도인의 시선부터 짚어 봐야겠다. 외부인이 봤을 때는 말도 안되는 문화(?)지만 그 안에서는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는게 바로 종교다. 이 카스트 제도는 인도의 종교, 힌두교와 관련이 있다.

 

불가촉 천민은 카르마(업, 운명)의 논리에 세뇌되어 살아왔다. 미천한 일을 하는 것은 모두 전생의 악업 때문이라고 믿는 것이다. 천하게 태어나 한평생 변소청소부로 살아가는 그들은 '전생에 내가 저지른 잘못의 대가를 치르고 있는 걸 꺼야.' 라고 생각하고 내세에서 좀 더 나은 삶을 살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현재에 주어진 미천란 일에 최선을 다한다. 그것이 그들의 이승에서의 다르마(의무)였다. 다르마란 한 개인이 가족, 친족, 카스트 구성원으로서 가지는 의무와 책임이다. 즉, 청소부의 다르마는 더 나은 내세를 기대하며 변소 청소를 잘 하는 것이다.

 

다시 읽어봐도 말도 안된다. 내 업보려니 하고는 이 불가촉 천민의 역할을 견디고 있다니. 노예처럼 힘든 개념이 아니다. 아웃카스트는 우물에서 물을 먹을 수 없다. 왜냐 하면 그들이 다은 우물물은 못먹게 되니까. 동냥하듯 누군가가 떠주는 물을 손에 받아서만 먹을 수 있다. 그들은 빗자루를 가지고 다녀야만 한다. 그들의 더러운 발자국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 이것이 단순한 차별이었다면 반란이 일어났을 테지만, 종교에서 기반한 업보로 대대손손 내려오다 보니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지 않는다.

 

여기에 저항한 인물이 바바사헤브다. 흔히 인도를 구원했던 이를 간디로 알고 있지만, 그 간디조차 카스트 제도의 불평등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유일하게 바바사헤브만이 달리트를 규합해 이 말도 안되는 제도에 저항했고, 수많은 아웃카스트들이 화답했다. 다무 역시 마찬가지 였다. 그들은 권리를 구걸하는 대신 투쟁해서 쟁취했다. 그들은 힌두교를 버리고 불교로 개종까지 하면서 신분에서 벗어나기를 원했다. 종교를 위해 죽음을 택하는 이들도 있다는 걸 생각해 보면 그들이 얼마나 절박했었는지를 알 수 있다. 다무와 그의 아내는 저항하고 투쟁했으며 아이들을 교육시켰다. 그들의 아이들은 카스트제도의 피해를 입지 않았고 당당한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무거운 이야기를 담고 있으면서, 한 사람의 전기를 읽듯이 쉽게 읽히는 게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다무의 덤덤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카스트 속에 갇힌 인도의 양면성, 이걸 극복해 내는 한 사람의 의지를 보고 감동을 받을 수 있다. 마치 인도판 <국제시장>처럼. 극중에서 황정민은 가난과 생존을 위해 투쟁했지만 다무는 인간이 되기 위해 투쟁했다. 신도 버린 자신을 스스로 구했다.

 

한국에는 신 카스트 제도가 있다. 금수저와 흙수저로 갈라진 양극화가 새로운 신분제도를 만들어 내고 있는 이 때, 우리는 다무의 사례에서 무얼 배울 수 있을까. 스스로 투쟁해서 얻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돕지 않는다. 한번 정해진 카스트는 대대손손 이어지며 종국에는 결코 깰 수 없는 벽이 되어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