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적인 작품으로 수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는 '젊은' 작가, 김영하. 이 베스트셀러 작가는 쉼 없이 빠른 세상속에서 '정신에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 이 작업을 시작한다. <보다>로 시작해서 <읽다>를 거쳐 <말하다>로 이어지는 이 산문 연작은 작가가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지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해 준다. 세상의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주로 다루다 보니 필연적으로 부조리를 다룰 수 밖에 없는데 정치인과는 달리 독특한 프레임으로 세상을 읽는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우리는 택시를 불친절과 승차거부라는 불쾌감, 사납금에 치여서 하루하루 먹고사는 하위 노동자, '을' 이라는 두가지 프레임으로 구분해서 바라본다. 전자에서는 씹을 대상으로, 후자에서는 보호해야 할 약자로 비춰지는데 정작 그 두 존재가 같다는 사실은 망각한다. 김영하는 날카로운 인사이트로 팩트를 바라보고 감각적인 문체와 깊이 있는 생각을 담아 요리해 낸다. 독자로서는 맛난 음식을 제대로 대접받는 기분.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이 산문 연작 기획은 작품생활의 나태함을 떨치기 위한 도구로, 깊이 있는 글쓰기를 위한 준비운동으로서 기능함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평범한 축구공도 메시의 발에서는 예술로 탄생하 듯, 작가 김영하가 글로 쓴 준비운동은 이미 준비운동이 아닌 것. 읽다 보면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방식에 탄복하고, 문장의 명쾌함에, 생각의 간결함에, 글솜씨에 빠져 든다. 열 다섯개 정도 되는 글로 세상을 모두 '보았다'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배우는 즐거움이 있다.
주제도 정치적인 내용부터, 갑과 을에 관한 이야기, 우리 어린 시절 베스트셀러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에 대한 뒤늦은 비판, 어차피 죽을 인생을 최선을 다해 사는 이유 같은 철학적 사유까지 넖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비판도 있지만 차분한 내면의 고찰도 있다. 눈이 있어도 자세히 보지 못하고 지나쳤던 세상이 <보다>라는 안경을 끼고 나니 꽤나 잘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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