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과 황제의 분쟁이 극한에 달하고 이단심판관이 마녀를 불태우며 면죄부가 발행되던 혼란스러운 1300년대 말. 교황파와 황제파의 회담 준비를 위해 수도원에 도착한 윌리엄과 조수 아드소의 이야기다. 엄청난 장서 보유로 이름난 이 수도원에서 묵시록의 예언을 본 딴 연쇄살인이 일어나고 윌리엄과 아드소가 범인을 뒤쫒는다. 추리소설이지만, 기호학의 대가 움베르토 에코는 작품속에 수많은 상징과 비유를 숨겨 놓았다. 뿐만 아니라, 살인의 배경에 교황과 황제파의 갈등, 베네딕트파와 프란체스코 파의 종교갈등을 깔아 놓아 사건의 방향을 짐작조차 하기 힘들다. 비슷한 전개를 가지고 있는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이라는 소설과 표절 논쟁이 상당했던 이력도 있다.
본격적인 소설 내용보다 배경 상황을 먼저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수많은 논쟁 거리가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웃음 논쟁이다. 문제의 핵심은 그리스도가 웃었는가 웃지 않았는가 하는 문제로 우습기 그지 없는 문제지만 소설 속에서는 진지하기 그지 없다. 사실 이건 수도사들의 태도 문제와도 연관되어 있는데 그리스도가 웃지 않았다면 그를 섬기는 수도사와 사제들 역시 웃을 수 없다는 논리다. 웃음이라 함은 정의하기 나름인데 이런 논쟁은 제목인 <장미의 이름>과도 연관이 있다.
장미라고는 한송이도 나오지 않는 작품의 제목이 아이러니 하게도 <장미의 이름>이다. 이건 일종의 기호학에 대한 총론 개념인데 장미란 것에는 본래 이름이 없다가 인간이 '장미'라는 이름과 '사랑', '고백' 등의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하면서 다른 기호학적 지위를 부여 받는다. 그리스도의 웃음도 마찬가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평이한 감정에 다른 이들이 의미를 부여하면서 다른 기호로서의 역할이 생기는 것.
두번 째 대립은 청빈 논쟁이다. 청빈한게 좋은거 아니냐, 생각하겠지만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당시의 상황은 황제파와 교황파가 대립하던 시기. 앞선 웃음 논쟁에서 알 수 있듯이 사제들이라면 그리스도의 행실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 그리스도가 청빈하고 소유하지 않았다면 교황 역시 소유할 수 없다. 그런데, 황제와 부딪혀가며 세력을 확장하는 교황이, 면죄부를 팔고 이단심판을 열고 있는 교황이 청빈을 인정할 수는 없다.
이런 청빈 논쟁으로 분열 된 교황파와 황제파의 중재를 위한 장소가 바로 이 수도원이다. 이 수도원에서 양측의 회담이 예정되어 있는 만큼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사안은 이단 심판이 열릴 만큼의 중대한 일이다. 첫번 째 죽음은 채식장인(책에 그림을 그리는 이)인 아델모. 후에 죽게 되는 베렝가리오의 연인으로 동성애에 대한 죄의식으로 자살한다. 두번째는 번역가인 베난티오로 봐서는 안될 것을 본 후에 살해 당한다. 과연 봐서는 안될 것이 무엇일까. 뒤를 이어 베렝가리오가 독살 된다. 베렝가리오는 아델모 뿐 아니라 장서관 담당자인 말라키아와도 관계가 있다. 그 뒤로 본초학자인 세베리노, 사서계 말라키아, 베노, 알리나르도, 우베르티노 수많은 수도사들이 죽어나가고 그 뒤로 수도원의 추악한 모습이 함께 한다. 동성애, 간통 같은 성적 문제부터, 이단, 정보의 독점, 정치적인 분열까지, 신을 섬기는 자들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사특하고 정치적이다.
결론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웃음에 대해 저술한 시학 2편, 희극을 숨기고 싶어했던 늙은 수도사 호르헤의 짓임이 밝혀지면서 마무리 되지만 호쾌한 결말은 아니다. 범인과 동기가 모두 밝혀졌음에도 사건이 진행형이라는 느낌은 없어지지 않는데 웃음에 대한 병적인 접근이 아직 그대로여서일까. 장서관이 불타서 모든 서책이 사라진 후에야 악이 청소된 느낌을 받을 수 있으니.
추리 소설의 요소와 함께 기호학, 역사, 철학을 집요하게 얽어낸 기가 막힌 희대의 명작이다. 다시 한번 얼마전 세상을 떠난 움베르토 에코님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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