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전세계가 대량생산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엄청난 고도 성장을 하고 있는 시기에 슈마허는 엄청나게 혁신적인 주장을 들고 나왔다. 케인즈라는 성서에 반기를 든 그의 주장의 핵심을 한마디로 '경제발전이 능사는 아니다'. 그 시기에 환경파괴를 비용으로 인식하고, 자동화에 따른 실엄률의 증가와 인간성의 파괴를 예측하며 나아가 그에 대한 대안으로 '중간기술'의 개념까지 제시한다. 더 놀라운 건 40년 전의 그 예측이 2016년 모두 맞아 떨어지고 있다. 이제 중간기술을 좀 검토해 봐야 하는게 아닐까.
이렇게 환경을 포함해 인간성, 가치 등 보이지 않는 모든 걸 비용으로 계산하는 경제학을 메타 경제학이라 한다. 따라서 메타 경제학에서의 발전이라는 건 재생 가능한 재료를 최대한으로 사용하고 가치를 이끌어 내야 한다. 최종 생산품만이 아니라 거기에 딸린 일자리까지도 모두 흑자로 귀속된다. 반대로 재생 불가능한 환경의 파괴로 인한 산업은 마이너스가 되겠지. 지금은 어느정도 사회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만 케인즈 학파가 지배하는 근대 경제학의 세계에서는 엄청나게 진보적인 이론이었다.
슈마허가 주장한 메타경제학의 놀라운 점은 실업에 대한 혜안이다. 2016년 전 세계적인 경제불황으로 20대의 태반이 실업인 상태를 예측이나 한걸까. 이 책의 상당 부분을 노동과 인간성의 상관관계, 억지스러울 정도로 계획적인 실업의 조절을 다루는데 할애하고 있다. 얼마전 알파고 돌풍과 함께 AI가 대체할 우리의 노동력에 대한 대안으로서도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을 듯 하다.
그런데 지금 시대가 중간기술을 도입할 정도로 빈곤한가라는 질문을 해 볼 수도 있겠다. 다음은 슈마허가 규정한 빈곤 조건이다.
2016년 한국의 모습, 그대로다.
중간기술이라는 특이한 개념은 엄청난 산업적 발전을 일부러 주저함으로서 일자리를 유지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면 자동차 제조의 완전 자동화는 수많은 노동자를 실업으로 내몰지만, 일부러 생산성이 떨어지는 수작업을 추가해서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 기업으로는 손해를 보는 엄청난 형태이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인간다운 삶과 사회적인 균형을 유지해준다. 기술발전이 인간을 자유케 하리라는 헛된 믿음을 버리면 또다른 비전이 보일 것이다. 중간기술의 조건은 다음과 같다.
2. 작업장 건설 비용은 평균적으로 저렴해야 하며, 그래서 엄청난 자본금이나 수입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수없이 만들어질 수 있어야 한다.
3. 비교적 단순한 생산 방법을 이용해서, 생산 공정 내부에서만이 아니라 조직, 원료, 공급, 금융, 판매 따위의 문제에서도 높은 숙련에 대한 요구는 최소화해야 한다.
4. 생산은 주로 그 지역의 원료를 이용해야 하며, 소비도 주로 그 지역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물론 자동차와 같은 첨단 산업은 무리겠지만 이런 방식의 중간기술 개발이 기술발전이 몰고오는 대량 실업의 사태를 돌파하고 나아가 인간을 더욱 인간 답게 만드는게 아닐까. 그야말로, 인간 중심의 경제를 바라볼 수 있도록.
조금 안타까운 건 너무 오래 전에 번역된데다 전문 번역가가 아닌 경제학 박사가 번역해 내용이 딱딱하고 매끄럽지 못한 면이 있다. 몇 차례 되풀이 읽어야 이해가 되는 부분도 여럿이지만 충분히 곱씹을 가치가 있다.
'열수레의 책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 천명관] 개미지옥 속에서의 폭발 (0) | 2016.04.03 |
---|---|
[감정교육 - 귀스타브 플로베르] 젊음은 어리석기 때문에 아름답다 (0) | 2016.03.24 |
[길 위의 사랑 - 린 그레이엄] 욕하면서 드라마를 보는 이유 (0) | 2016.03.10 |
[일을 했으면 성과를 내라 - 류랑도] 꼰대, 글로 갈구다. (0) | 2016.03.09 |
[보다 - 김영하] 소설가의 세상 돋보기 (0) | 2016.03.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