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수레의 책읽기

[작은 것이 아름답다(인간 중심의 경제를 위하여) - E.F. 슈마허] 40년 전에 상상한 경제 발전의 새로운 시각

슬슬살살 2016. 3. 21. 23:11

1973년, 전세계가 대량생산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엄청난 고도 성장을 하고 있는 시기에 슈마허는 엄청나게 혁신적인 주장을 들고 나왔다. 케인즈라는 성서에 반기를 든 그의 주장의 핵심을 한마디로 '경제발전이 능사는 아니다'. 그 시기에 환경파괴를 비용으로 인식하고, 자동화에 따른 실엄률의 증가와 인간성의 파괴를 예측하며 나아가 그에 대한 대안으로 '중간기술'의 개념까지 제시한다. 더 놀라운 건 40년 전의 그 예측이 2016년 모두 맞아 떨어지고 있다. 이제 중간기술을 좀 검토해 봐야 하는게 아닐까.

 

만일 탐욕과 시기심 같은 인간의 악덕이 체계적으로 길러진다면, 그것의 필연적인 결과는 지성의 붕괴에 결코 못하지 않다. 탐욕이나 시기심에 따라 움직이는 인간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능력, 즉 그것을 전체적으로 보는 능력을 상실하며, 그래서 그의 성공은 곧 실패가 된다.

 

이렇게 환경을 포함해 인간성, 가치 등 보이지 않는 모든 걸 비용으로 계산하는 경제학을 메타 경제학이라 한다. 따라서 메타 경제학에서의 발전이라는 건 재생 가능한 재료를 최대한으로 사용하고 가치를 이끌어 내야 한다. 최종 생산품만이 아니라 거기에 딸린 일자리까지도 모두 흑자로 귀속된다. 반대로 재생 불가능한 환경의 파괴로 인한 산업은 마이너스가 되겠지. 지금은 어느정도 사회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만 케인즈 학파가 지배하는 근대 경제학의 세계에서는 엄청나게 진보적인 이론이었다.

 

슈마허가 주장한 메타경제학의 놀라운 점은 실업에 대한 혜안이다. 2016년 전 세계적인 경제불황으로 20대의 태반이 실업인 상태를 예측이나 한걸까. 이 책의 상당 부분을 노동과 인간성의 상관관계, 억지스러울 정도로 계획적인 실업의 조절을 다루는데 할애하고 있다. 얼마전 알파고 돌풍과 함께 AI가 대체할 우리의 노동력에 대한 대안으로서도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을 듯 하다.

 

생산 시간을 총 사회적 시간의 3.5%로 축소하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작업 시간으로부터 모든 인간적인 기쁨이나 만족감을 앗아가는 결과를 초래했다. 진실로 모든 실질적인 생산이 인간성을 풍요롭게 하기는 커녕 그것을 고갈시키는 비인간적인 잡무로 변해 버렸다. 그래서 흔히 '죽은 물질은 작업장에서 개선되어 나오지만, 인간은 거기서 부패하고 타락한다'고 얘기된다.

 

그런데 지금 시대가 중간기술을 도입할 정도로 빈곤한가라는 질문을 해 볼 수도 있겠다. 다음은 슈마허가 규정한 빈곤 조건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일자리가 없으며, 있더라도 일시적인 것 뿐이라는 점이다. 아울러 이들은 가난하고 무기력하며, 종종 절망한 나머지 대도시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농촌을 떠난다는 점이다. 농촌의 실업은 대규모 도시이주를 불러일으키며, 이걸은 다시 가장 부유한 국가에서도 부담이 될만큼 도시의 성장을 빠르게 촉진한다. 실업이 농촌에서 도시로 옮겨가는 것이다.

 

2016년 한국의 모습, 그대로다.

 

중간기술이라는 특이한 개념은 엄청난 산업적 발전을 일부러 주저함으로서 일자리를 유지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면 자동차 제조의 완전 자동화는 수많은 노동자를 실업으로 내몰지만, 일부러 생산성이 떨어지는 수작업을 추가해서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 기업으로는 손해를 보는 엄청난 형태이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인간다운 삶과 사회적인 균형을 유지해준다. 기술발전이 인간을 자유케 하리라는 헛된 믿음을 버리면 또다른 비전이 보일 것이다. 중간기술의 조건은 다음과 같다.

 

1. 작업장은 이들이 주로 이주하는 대도시 지역에 만들지 말고, 사람들이 현재 살고 있는 곳에 만들어야 한다.
2. 작업장 건설 비용은 평균적으로 저렴해야 하며, 그래서 엄청난 자본금이나 수입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수없이 만들어질 수 있어야 한다.
3. 비교적 단순한 생산 방법을 이용해서, 생산 공정 내부에서만이 아니라 조직, 원료, 공급, 금융, 판매 따위의 문제에서도 높은 숙련에 대한 요구는 최소화해야 한다.
4. 생산은 주로 그 지역의 원료를 이용해야 하며, 소비도 주로 그 지역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물론 자동차와 같은 첨단 산업은 무리겠지만 이런 방식의 중간기술 개발이 기술발전이 몰고오는 대량 실업의 사태를 돌파하고 나아가 인간을 더욱 인간 답게 만드는게 아닐까. 그야말로, 인간 중심의 경제를 바라볼 수 있도록.

 

조금 안타까운 건 너무 오래 전에 번역된데다 전문 번역가가 아닌 경제학 박사가 번역해 내용이 딱딱하고 매끄럽지 못한 면이 있다. 몇 차례 되풀이 읽어야 이해가 되는 부분도 여럿이지만 충분히 곱씹을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