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시민혁명 전후의 한 지식인의 사랑.....이라고 얘기하고 싶지만 멍청함에 대한 이야기다. 진실한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지만 유부녀에 대한 어설픈 짝사랑인데다가 지식인인 주제에 현실인식도 없다. 파리혁명같은 역사적인 사건의 한복판에서 사실을 외면하고 사랑놀음에 빠져서 돈을 탕진하는 프레데릭의 모습은 울화통이 터진다. 재밌는 건 그의 친구들도 그걸 알고 있는 건지 철저하게 이용만 해먹는다.
자유연애가 성행하던 당시의 사회상을 감안하더라도 프레데릭 식의 애정행각은 비웃음만 나온다. 중이병에 걸린 성인을 보는 기분이랄까. 플로베르가 원했던 이미지도 이것이었을까?
20대 초반의 청년 프레데릭은 몰락한 귀족가의 아들이다. 고향으로 가던 중 한 여인을 보고 한눈에 사랑에 빠지지만 그 여인은 이미 결혼한 몸. 상사병에 빠진채 어떻게든 아르누 부인을 다시 만나려 노력하고, 결국 재회에 성공한다. 그러나 아르누 부인은 프레데릭에게 아무 관심이 없고 가난한 프레데릭 역시 자신감 없이 부인의 주변을 맴돌 뿐이다. 친구들이 모두 프랑스 혁명에 빠져 있는 사이 프레데릭은 주변인으로서 사랑놀음만 할 뿐이지만, 어느날 거액을 상속 받으면서 프레데릭은 변한다. 더욱더 속물스러운 사랑꾼으로....
해가 지날 수록 프레데릭은 여러 사랑과 사건 사이에 휘말리지만 정작 본인은 늘 주변인이다. 로자네트와의 동거와 출산, 아르누 부인과의 밀회, 당브뢰즈 공작부인과의 정략적인 결혼과 파산까지 온갖 일들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관조자의 역할만 할 뿐이다. 사랑만이 아니다. 파리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 한복판에서 그의 친구들이 모두 여기 휘말리는 때에도 변두리에 머무른다.
수려한 묘사꾼 답게 문장문장이 대단히 아름답다. 아름다운 문장이라는 건 당시의 분위기를 그대로 전달해 준다는 얘기로, 꼭 1800년대 파리의 향기가 나는 느낌이다. 다만 프랑스 역사에 대한 기초지식 없이 이해할 수 없는 비유나 인용이 많다는 건 좀 장벽이다. 예를들면 송아지 머리 같은.
까지 읽어도 전혀 알 수 없는 유머. 결국 프레데릭은 공작부인과는 이혼 한채 노년을 맞이한다. 재산 역시 대부분 들어먹고, 소시민으로 사는 중. 로자네트는 뚱뚱해졌으며 아르누 부인과는 한차례 만나기는 하지만 재결합에 실패한다. 그때가 좋았냐는 친구의 물음에 프레데릭은 이렇게 대답한다. "그때가 좋았지" 가만 보면 젏음은 어리석고 어리석기 때문에 아름다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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