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수레의 책읽기

[감정교육 - 귀스타브 플로베르] 젊음은 어리석기 때문에 아름답다

슬슬살살 2016. 3. 24. 23:01
<감정교육>은 사랑 이야기다. 그러나 그것은 이기적이고, 계산하는 신경질적인 습관에 의해 시들어버린 현대적인 세계와도 같은 현대적인 사랑이다. 여기에 바로 플로베르의 주요한 예술적 문제가 놓여 있다. 그는 시작부터 그 점을 무척 명철하게 보았다. 글을 쓰기 시작했던 초기에 그는 자신의 소설을 '사랑, 열정에 관한 책. 그러나 오늘날 허용되는 형태의, 곧 소극적인 종류의 열정'이라고 설명했다.

 

파리의 시민혁명 전후의 한 지식인의 사랑.....이라고 얘기하고 싶지만 멍청함에 대한 이야기다. 진실한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지만 유부녀에 대한 어설픈 짝사랑인데다가 지식인인 주제에 현실인식도 없다. 파리혁명같은 역사적인 사건의 한복판에서 사실을 외면하고 사랑놀음에 빠져서 돈을 탕진하는 프레데릭의 모습은 울화통이 터진다. 재밌는 건 그의 친구들도 그걸 알고 있는 건지 철저하게 이용만 해먹는다.

 

그는 자신이 사랑한 만큼 그녀도 자신을 사랑해 주기를 바라지도 않고, 다른 사심 없이, 절대적으로 그녀를 사랑했다. 갑작스레 감사라도 드리고 싶은, 그런 무언의 열망에 빠진 그는 그녀의 이마에 소나기와도 같은 입맞춤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러는 동안 내면에서 이는 숨결에 그는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그것은 자신을 희생하고 싶은 욕망, 즉각적인 헌신에 대한 욕구였으며, 그러면서도 그것은 채울 수 없는 것이었기에 더욱 강했다.

 

자유연애가 성행하던 당시의 사회상을 감안하더라도 프레데릭 식의 애정행각은 비웃음만 나온다. 중이병에 걸린 성인을 보는 기분이랄까. 플로베르가 원했던 이미지도 이것이었을까?

 

20대 초반의 청년 프레데릭은 몰락한 귀족가의 아들이다. 고향으로 가던 중 한 여인을 보고 한눈에 사랑에 빠지지만 그 여인은 이미 결혼한 몸. 상사병에 빠진채 어떻게든 아르누 부인을 다시 만나려 노력하고, 결국 재회에 성공한다. 그러나 아르누 부인은 프레데릭에게 아무 관심이 없고 가난한 프레데릭 역시 자신감 없이 부인의 주변을 맴돌 뿐이다. 친구들이 모두 프랑스 혁명에 빠져 있는 사이 프레데릭은 주변인으로서 사랑놀음만 할 뿐이지만, 어느날 거액을 상속 받으면서 프레데릭은 변한다. 더욱더 속물스러운 사랑꾼으로....

 

해가 지날 수록 프레데릭은 여러 사랑과 사건 사이에 휘말리지만 정작 본인은 늘 주변인이다. 로자네트와의 동거와 출산, 아르누 부인과의 밀회, 당브뢰즈 공작부인과의 정략적인 결혼과 파산까지 온갖 일들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관조자의 역할만 할 뿐이다. 사랑만이 아니다. 파리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 한복판에서 그의 친구들이 모두 여기 휘말리는 때에도 변두리에 머무른다.

 

해가 뜨고 가벼운 안개가 강물 위를 스치면, 옆의 꽃시장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이 피우는 파이프 담배 연기가 둥글게 말리며 맑은 공기 속으로 피어올랐도, 맑은 공기는 아직도 부어 있는 그들의 눈을 상쾌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들은 그 공기를 들이마시며 거대한 희망이 펼쳐지는 것을 느끼곤 했다.

 

수려한 묘사꾼 답게 문장문장이 대단히 아름답다. 아름다운 문장이라는 건 당시의 분위기를 그대로 전달해 준다는 얘기로, 꼭 1800년대 파리의 향기가 나는 느낌이다. 다만 프랑스 역사에 대한 기초지식 없이 이해할 수 없는 비유나 인용이 많다는 건 좀 장벽이다. 예를들면 송아지 머리 같은.

 

영국 왕당파들은 1월 30일을 기념하는 식을 올리는데 독립파들이 그걸 조롱하기 위해 일년에 한번 연회를 열기로 했거든. 그 연회에서는 송아지 머리 고기를 먹고 그 두개골에다 적포도주를 부어서 스튜어트 왕조의 멸종을 위해 건배를 하고 마셨지. 테르미도르 이후에 테러리스트들이 그와 마찬가지 결사조직을 만들었는데, 그걸 보면 어리석음이란 여기저기 만발했다는 것을 알 수 있어.

 

까지 읽어도 전혀 알 수 없는 유머. 결국 프레데릭은 공작부인과는 이혼 한채 노년을 맞이한다. 재산 역시 대부분 들어먹고, 소시민으로 사는 중. 로자네트는 뚱뚱해졌으며 아르누 부인과는 한차례 만나기는 하지만 재결합에 실패한다. 그때가 좋았냐는 친구의 물음에 프레데릭은 이렇게 대답한다. "그때가 좋았지" 가만 보면 젏음은 어리석고 어리석기 때문에 아름다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