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talian's wife라는 원제의 통속적인 로맨스물이다.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고 진짜 할리퀸 시리즈다. 삼십대 중반의 남성이 읽기에 적합치 않다는 건 잘 알고 있지만, 손에 쥐고 나니 단숨에 읽어내려가서 어쩔 수 없었다. 저자인 린 그레이엄은 지금까지도 활발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할리퀸의 대표 아이콘이다. 로맨스 소설이라는 장르가 우리나라에서는 밀리터리 만큼이나 매니악한 분야인데 아직까지 번역본 출간 소식이 들려오는 걸 보면 나름의 팬덤은 형성되어 있는 듯 하다. 문학적인 완성도를 기대하지 않더라도 재미라는 측면만 가지고 본다면 80점은 넘는 작품이다. 중학교 때 배운 바에 따르면 재미도 엄연히 독서의 기능 중 하나다.
이탈리아계 영국인 재벌 리오는 약혼자의 불륜을 목격하고 돌아오는 길에 미혼모 홀리와 그의 아이를 차로 치고 만다. (아마 이 만남에서 <길 위의 사랑>이라는 한국식 제목이 나온 듯 하다) 정확히는 굶주림과 추위로 그 차 앞에서 고꾸라진 것인데, 이 만남에서부터 결혼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다.
흔한 신데렐라 스토리지만 이 노련한 작가는 페이지마다 오밀조밀한 사건 사고를 발라 놨는데 한번 보면 끊을 수 없는 막장 드라마를 보는 기분이다. 재밌는 건 동양이나 서양이나 막장 요소는 비슷하다는 점이다. 헤어진 막장 애인, 재벌을 옆에 두고도 욕심내지 않는 여주인공, 예비 시어머니(?) 와의 알듯 모를 듯한 관계까지. 그나마 주인공이 미혼모라는게 조금 색다르긴 하지만 이 역시 '막장'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막장 막장 해서 진짜 막장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다뤄지는 상황 중에 극단적인 장면이 좀 있을 뿐이지 한국 드라마의 막장성에 비하면 착한 편이다. 로맨스에 가슴 뛸 나이는 아니지만 학생이 된 것 같은 느낌이 꽤나 좋다. 어디까지나 가끔이라는 단서가 붙기는 하지만. 아줌마들이 드라마에 열중하는 이유가 다 있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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