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베니아라는 나름 방대한 세계관의 연작 소설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다. <다크메이지>가 나오는 시기에는 그야말로 판타지의 전성시대. 수많은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읽을꺼리를 많이 제공했지만 반대로 저질의 지뢰작도 다수여서 '양판소'라는 불명예스러운 신조어가 탄생한 시기였다. <다크메이지> 역시 필력의 문제로 인해 수준이 높다고는 할 수 없지만 기존에 시도 하지 않았던 여러 요소들을 녹여 넣고 진부한 설정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해서 나름 참신한 출발을 했던 작품이다.일단 주인공 부터가 기존의 블링블링한 미소년, 혹은 절대강자의 모습을 벗어난 추남에 곱추라는 설정이고 전체적인 배경이 다크하다.
마교 출신의 소공자인 독고성은 곱추에 엄청난 추남. 정사대전 직후 소림에 볼모로 잡혀 무공을 익히지 못하는데다 훗날을 대비해 소림에서 시술한 '칠종금단술'로 인간을 죽일 수 없는 몸이다. 우여곡절 끝에 소림에서 빠져나와 모교의 교주가 되지만 이 과정에서 무공을 익히기 위해 금지된 술법을 타의로 사용하게 된다. 천하제일인이 되었으나 금지된 술법을 쓴 이유로 전 무림의 표적이 되어 쫒기던 중 부하들을 모두 잃고 절벽으로 떨어진다. 이 모든 것은 부교주인 사준환의 계략. 무공이 고강하지 않으나 엄청난 계략가인 사준환이 사실은 정사대전을 일으켜 소림으로 독고성을 넘기고 다시 그를 이용해 무림을 평정하고자 했던 것. 필요가 없어진 독고성을 제거하기 위해 금지된 술법을 사용한 것도 그였다.
한편, 또다른 차원의 세계의 트루베니아 대륙에서는 드래곤과의 내전으로 절대적인 강자가 필요한 상황. 시대의 절대강자 카르센 대제가 다른 차원에서 왔다는 점에 착안해 또다른 강자를 데려오기 위해 무림으로 온 마법사 일행이 독고성의 무위를 확인하고 절체절명의 순간 그를 구해 아르카디아로 돌아간다.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신이 내린 서약석을 빼앗기고 드래곤과의 전투에서 밀리고만 있는 아르카디아 대륙을 구해내기 위한 방편이었으나 이미 사준환과의 전투에서 단전을 잃은 독고성은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결국, 트루베니아의 수뇌부는 독고성을 포기하고 드래곤과의 일전을 준비한다.
살아남기 위해 데이몬으로 이름을 바꾼 독고성은 사준환에 복수하기 위해 이 알지 못하는 땅에서 흑마법을 익히며 부단히 노력한다. 갖은 고생 끝에 흑마법을 일정 수준 이상까지 익힌 데이몬은 다시 트루베니아 연합군에 참여한다. 드래곤과의 결전을 앞두고 인간군에는 하나의 희망이 생기니 주신 베르하젤과의 교신이 가능한 성녀 다프네의 발견이다. 서약석이 베르하젤과의 약속의 징표라면 성녀는 소통의 도구. 성녀를 통해 서약석을 다시 받는다면 인간계는 다시 재기를 노릴 수 있기 때문에 성녀를 신전으로 데리고 가는 미션에 모든 인류의 목숨줄이 달려 있다. 데이몬은 자신의 추한 모습에 흔들리지 않는 다프네에게 사랑을 느끼고 이 미션에 성녀를 보호하기 위한 마법사로 최후의 전쟁에 참여한다.
그러나, 이 최후의 전쟁에서 인간군은 처참하게 패배하고 전원 몰살. 살아남은 트루베니아의 인간들은 모두 오크군의 노예가 되어 일을 하거나 식량이 되어 가축과도 같은 생활을 하게 된다. 다프네는 석화마법에 걸려 돌로 변하고 데이몬은 인간계를 정벌하는 드래곤의 리치가 되어 500년간 죽지도 못하고 그의 레어를 지키는 일을 하게 된다. 그러나 끈기의 데이몬. 500년간 드래곤의 레어에서 마법을 익히며 복수를 다짐하고, 결국 9서클을 돌파하며 드래곤에서 탈출. 크로센 대제가 세운 트루베니아로 건너가 드래곤과의 전쟁을 위한 파티를 만들어낸다. 이 과정에서 그를 끌어 드리기 위한 각종 계략과 트루베니아 내부의 권력다툼에 휘말리지만 결국 모든 인간군을 하나로 만드는데 성공. 아르카디아로 건너가 드래곤과의 전쟁을 치른다.
필력과는 무관하게 상당히 방대한 연대기를 가지고 있는데다 나름의 인과관계에 타당성이 있어 상당히 재미있는 작품이다. 대다수의 주조연들이 흑마법사, 리치, 다크나이트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것도 흥미롭다. 판타지에서 惡으로 표현되는 이들로 인류를 구한다는 내용도 일반적이지 않고 절대 강자임에도 인간을 죽일 수 없다는 강력한 금제 때문에 밸런스도 무너지지 않는다. 수준낮은 작품을에서 볼 수 있는 등급제(백날 소드마스터니 마스터니 하는 등급 타령을 한다거나)도 가볍게 다루고 있고 흔한 설정(무림대회니, 여관에서의 싸움이니 하는 것들)도 최대한 줄여서 신선한 느낌을 받는다. 조연들 하나하나의 개성도 살아있어 꽤나 방대한 분량을 다양한 각도에서 전개했다.
복선구조도 치밀하게 집어 넣어서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전투들에 흥미를 불어 넣었다. 대표적인 것이 중원에서 건너온 크로센 대제의 정체. 사실 크로센 대제는 중원에서부터 독고성을 추격해 온 정파의 영호명이라는 인물로 같은 차원이동을 하였으나 모종의 이유로 50년이나 먼저 도착해 버렸다. 무공을 잃지는 않았기에 세력을 규합할 수 있었으며 훗날 크로센 대제로 명성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수많은 힘의 역학관계, 데이몬의 고생담(?), 캐릭터 하나하나의 인간미, 흥미로운 반전까지 적절하게 배분되어 엄청난 몰입도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작가의 경험이 짧아 필력에서 여러가지 문제점을 보이기는 하지만 재미를 추구하는 장르소설의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하고 있는 작품이다. 도저히 속편을 찾아보지 않을 수 없는 소설이다.
PS. 주인공이 다르기는 하지만 <하프블러드>와 <트루베니아 연대기>에서도 세계관이 이어지고 이 작품에서 등장한 인물들의 후일담도 엮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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