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설음. 소설가 김원우의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 느끼는 감정이다. 그리고 뒤이은 당혹감. 매끄럽게 읽히지 않는 낮선 단어들과 일반적이지 않은 문장, 시제, 맺음은 독자를 곤란하게 만든다. 어색한 첫 만남 이후에 자칫 설렁설렁 하다가는 몰이해와 지루함이 뒤따른다. 조곤조곤 문장을 씹어가며 읽어야만 진정한 맛이 나는 소설이다. 문장의 어려움에는 물론 나의 무지함의 제 1원인이겠지만 단어 한개도 겹치지 않도록 수만가지의 후보중에서 뽑아낸 작가의 노력도 원인이다. 아무 페이지만 펼치더라도 한 개 정도는 뜻모를 말이 나오는 문장.
벌써 두 개의 애매한 단어가 나온다. 먼저 성선은 생식기관의 한자어고, 여투었다란 말은 아껴서 쓰고 남은걸 모아둔다는 뜻이다. 한 문장을 읽는데 두 번의 검색이 필요하다. 또 김원우는 만연체의 대가다. 간결하고 매끈한 문체가 넘쳐나는 요즘. 독보적인 장문을 구사하는 작가다. 익숙하지 않은 만연이 곱씹어 읽는 법을 되새겨 준다.
<객수산록>은 표제작을 비롯해 5쳔의 중편이 실려 있다. 각각 다른 이야기지만 전편을 궤뚫는 한가지가 있다면 바로 '근대에 대한 불편함'이다. 먼저 <반풍토설초>. 국어학원을 운영하는 화자가 작가인 '김선생'과 교류하는 이야기다. 스토리보다는 김선생의 입과 '나'의 눈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 변화가 인상적이다. 근대화에 미쳐버린 인간 군상들. 아직 근대화하지 못한 풍토들의 추악함이 뒤얽혀 '미개한 사회'의 '날' 모습을 지켜 본다. <신종미개인 일정>은 졸부 '박사장'의 급사를 다루는 작품이다. 자수성가했으며 사람만나길 좋아하는 '박사장'은 배고픈 작가들을 인심좋게 후원하기도 하는 인물이지만 현대 문명인 답게 조깅과 골프에 빠져 있는 인물이다. 조깅을 하다 급작스레 죽은 박사장의 모습에서 '제대로 살지 못하고 가버린 이'의 허망함이 엿보인다.
<무병신음기>는 말 그대로 병이 없는데 아파하는 이들의 이야기다. 여기서도 화자는 지방대학교의 교수다. 김원우의 글에서 대부분의 화자는 작가 아니면 교수다. 무기력한 지식 노동자만이 그의 관심사이며 세상을 비평할 자세가 되어 있나보다. <무병신음기>에서는 지방대 기숙사에서 외로운 기러기아빠 생활을 하는 화자. 사기꾼에게 말린 아들에게 돈을 대는 황노인. 바람난 남편에게 돈을 날릴까봐 전전긍긍하는 도씨부인. 평생을 노동하며 살아온 독일파견 간호사 출신의 처형. 모두 속병을 앓고 있는 인물이다. 적어도 김원우가 진단한 우리 사회는 모두가 병 없이 신음하는 중이고, 약이 없다.
<객수산록>, <모기발순> 역시 화자가 몸담고 있는 작은 사회를 통해서 사회부조리를 잔인하게 파헤친다. 화자를 중심으로 잘고 너르게 퍼져나가는 동심원들은 하나같이 올바르게 그려진 모습이 없다. 읽는 내동 만연체의 불편함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독서를 지치게 하는 건 김원우가 보여주는 암울한 세계관이었다. 도저희 희망이 보이지 않는 인세지옥이 펼쳐진 희뿌연한 우리 사회의 모습을 낱낱이 보여줄 때 느껴지는 자괴감이란. 장기자랑에서 구경하는 사람이 더 부끄러울 때가 있다. 김원우가 보여준 세상은 읽는 이가 더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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