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티벳을 이끌어 오고 있는 건 달라이 라마다. 정치와 종교가 분리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요즘에도 티벳인들은 고집스럽게 종교 지도자에 그들의 삶을 모두 맡기고 있다. 심지어 온전한 나라도 아니고, 중국에 박해를 받는 시점에서도 그들은 달라이 라마만을 믿고 따른다. 또, 달라이 라마는 그들에게 저항이 아닌 용서를 행하라 가르친다. 바보 지도자에 바보 국민. 그럼에도 세계 최강국 중국은 달라이라마와 티벳을 어쩌지 못하고 있다.
달라이 라마는 세습제다. 정확히는 환생을 통해 다음 라마로 다시 태어나니, 종교적 관점에서 달라이 라마는 육신만 바뀌었을 뿐 대대손손 한 인물이다. 그러나 차기 달라이 라마를 중국이 강제로 지정할 가능성이 있어서 14대째인 금번 달라이 라마는 환생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했다. 제목에서 '마지막'이라는 표현을 넣은 것도 그 때문이다.
<용서>는 달라이 라마의 중국인 친구가 남긴 기록이다. 물론 홍콩계이기는 하지만 중국 혈통의 인물이 달라이 라마의 친구라니. 무려 30년 동안 빅터 챈은 달라이 라마 곁에서 함께 수련하고 함께 화두를 고민했다. 챈은 이 기록을 한 권의 책으로 남겼다. 일반적인 종교적인 마음가짐, 수련, 적을 용서하라는 판에 박힌 가르침과 별반 다를 바 없지만, 달라이 라마의 입에서 나오는 가르침은 울림이 다르다. 엄청난 박해를 받는 민족의 지도자 치고는 너무 나약해 보이는 가르침을 내린다.
웃기지도 않지만, 티벳 영토를 흡수하고 그들의 문화를 말살하고 저항하는 이들을 감옥에 보내고 학살하는 국가에 대해 용서라는 전략을 취하는 지도자라니. 심지어 그 가르침을 따르는 민족은 심지어 고귀해 보일 정도다. 단순히 순박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왜 용서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달라이 라마는 상호 의존의 원리로 답을 한다.
쉽게 생각하면 나비효과와 부메랑 효과를 함게 떠올리면 된다. 그러나 달라이 라마는 관념적인 차원의 접근이 아니라 명상을 통해 실제로 물아일체를 경험하며 상호의존을 직접적으로 느낀다고 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공즉시색의 경지다. 실제로 이 경지에서는 모든 것이 하찮고 자신의 보잘것 없음을 느끼며 상대방과도 하나가 된 것을 느끼게 되어 용서라는 관념을 받아들이게 된다. 달라이 라마는 이 경지의 선구자로서 대중들에게 가르침을 내리고 있을 뿐이다.
일반인이 쉽게 접할 수 없는 경지를 몇글자의 글로 받아 들이기는 불가능 하지만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달라이 라마를 더욱 가깝게 살피고 그의 사상적 바탕을 간접적으로나마 읽고 공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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