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수레의 책읽기

[오래전 집을 떠날 때] 외로운 여정을 담은 여덟개의 이야기

슬슬살살 2017. 1. 31. 22:59

한방에 훅 가버리긴 했지만 신경숙은 한때 한국의 대표 여류 문인이었다. 데뷔 이래 장편이건 단편이건 발표할 때마다 문단의 주목을 받아왔고 글 속에 현대인, 특히 여성의 외로움을 촘촘히 담아내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아니, 나 있었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어쨌거나 <오래전 집을 떠날 때>에는 평범한 일상을 다르게 바라보고 그곳에서 떠나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옴을 다룬 작품 여덟편이 모여 있다. 표절 시비가 있는 <빈 집> 또한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

 

그건 매우 슬픈 일이야. 그때서야 깨달았지요. 내가 내 태생지를 떠나올 때 누군가에게 했던 말.

 

각기 다른 때에 쓰여진 작품들이지만 이 여덟편을 한 곳으로 엮어 낸 주제가 있다. 떠남과 돌아옴. 그리고 고독이다. 작품 속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평범한 일상속에서 외로운 여성이다.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주인공들 역시 특이한 공간 구성 장치를 이용해 철저하게 고립시킨다.

 

도저히 주거용 건물이 있을 것 같지 않은 시내 한복판에 이 스튜디오는 뭔가 비현실적으로 삐딱하게 서 있었다. 그 속엔 14평과 10평짜리 원룸 형식의 방들이 모여 있었다. 제대로 된 살림을 하는 이들은 없고, 시내에 직장을 둔 혼자 사는 사람들이나, 혹은 굽이진 사연을 안은 채 둘이 사는 사람들, 간혹 신혼 부부들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그는 지난 일년을 그녀의 집에 드나들면서 이 스튜디오 내에서 어린아이가 딸린 가족들을 만난 적은 없었다.

 

몇가지 단편들에 연속적으로 나오는 소재. 바로 독특한 건물이다. <오래전 집을 떠날 때>에 등장하는 건물들은 하나같이 이상하다. 도심속에 있으면서도 고립되어 있고 심지어 호텔 조차도 죽은 듯이 조용한 공간이다. 작가처럼, 주인공들 처럼, 건물도 외롭다. 심지어 호텔 방 조차도.

 

이제 호텔 바깥에서 308호 베란다는 금방 눈에 띈다. 나란나란 똑같은 베란다 중에서 308호 베란다만이 아기자기하다. 당근 싹은 푸르게 자라고 있고, 국화에서는 노란 꽃이 올라오고 있다. 아마 소녀는 새장이 있다면 그 새장도 그곳에 갖다 걸어 놓았으리라. 둘이 친해지고 난 다음부터 소녀는 더 이상 처녀의 베란다를 망원경으로 올려다보지 않는다.

 

그러한 공간 속에서 주인공들은 어디론가 떠난다. 마추피추로, 제주도로. 그러나 어디를 가더라도 그녀들을 맞는 건 심연처럼 까마득한 고독감이다. 일상에서 탈출하더라도 외로움은 떨쳐버릴 수 없고 어쩔 수 없이 돌아와야 하는 건, 신경숙의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의 숙명과도 같다.

 

돌아와서 죽은 벽시계에 새 건전지를 갈아 끼웠고. 윙윙 소리가 나는 온수통을 사람을 불러 고쳤다. 이제 여기에 있으니 성산포에서 배회하던 내가 빛이 들어간 필름처럼 떠오른다. 내 머리카락에선 아직 갯내가 맡아지고 내 귓속에도 아직 바닷새가 끼룩거리는 소리가 살고 있다.

 

재밌는 건 이들의 외로움이 어떤 설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 일상을 조금 색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 만으로 우리 일상은 조용하고 외롭다. 그리고 그 외로움을 읽고 나면 반대로 바삐 돌아가는 내 삶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