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수레의 책읽기

[아담도 이브도 없는] 첫사랑과 일본

슬슬살살 2017. 1. 28. 20:37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을 그토록 사랑하는 벨기에인 아멜리 노통브. 세계적인 작가 명단에 이름을 올린 후에 그 열망은 더욱 응축되어 수많은 작품들 사이에 쓰여졌다. 그 중에 작가의 실제 어린 시절을 그려낸 작품은 두 개다. 작가 본인의 유아 시기를 다룬 '이토록 아름다운 세살', 그리고 이 작품이다. '아담도 이브도 없는'은 작가의 첫 사랑을 다루고 있다.

 

아무 이유도 없이 일본인 남자와 첫 만남, 첫 사랑에 빠지는 장면은 작가의 무조건적인 일본애(愛)와 똑같다. 불어 과외를 위해 만난 그녀의 마음을 훔친 이는 일본인 남자, 릴리다. 국적과 무관하게, 릴리가 매력적인 남성이라는데는 동의한다. 그러나 에밀리가 사랑에 빠진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일본인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마치 그녀가 후지산을 오르는 걸 소원으로 지닌 것처럼.

 

"후지산!"
그것은 내 꿈이었다. 전통에 따르면 모든 일본인은 평생 적어도 한번은 후지산에 올라가봤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그토록 명망 높은 국적을 가질 자격이 없다. 일본인이 되기를 열렬히 갈망했던 나에겐 그 등반이 일본 국적을 따기 위한 묘책으로 여겨졌다. 산을 타는 게 내 주특기였던만큼 더더욱.

 

린리는 전통적인 일본 남자는 아니다. 반대로 꽤 그럴싸한 부와 걸맞는 교양으로 오히려 서양적인 매력을 가졌다. 그럼에도 그는 일본을 대표해서 에밀리와 만났고 뜨겁게 사랑한다. 그들의 연애는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워 읽는 동안 입가에 미소가 가득하다. 대부분의 첫사랑이 그렇듯 왜곡된 기억이더라도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려 하고 서로의 문화를 사랑하며 서로를 아끼는 모습은 완벽한 첫사랑의 원형이다.

 

그러나 모든 첫사랑이 그렇듯 이들도 별일 아닌 일로 헤어진다. 약혼까지 한 상태에서 에밀리가 일방적으로 도망친다. 이 이유없는 도피를 이해하려면 후지산의 조난을 떠올려야 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말이 상투적이기는 하지만 에밀리는 진짜로 사랑하기 때문에 달아난다. 아름다웠지만 잔인했던 후지산 처럼. 에밀리는 스스로 선택하지 못한다는 것에 대해 불안감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많이 좋아하고 자연스레 결혼으로 발전하는 과정. '자연스레'라는 말에는 에밀리가 주도하지 못한다는 뜻이 담겨있기에 에밀리는 릴리로부터 달아난다. 모순이지만 사실이다.

 

책 제목에는 한 단어가 생략되어 있다. '아담도 이브도 없는'이라는 말 뒤에 '에덴'이 숨겨져 있다. 아담과 이브는 당연히 순수했던 첫사랑을 즐겼던 그들일테고, 에덴은 어디일까. 아마 일본이 아닐까? 그녀의 첫사랑은 이제 추억으로 남았지만 에덴은 영원히 에덴이다. 아담과 이브가 없어도. 실패한 첫사랑과는 상관없이 그녀의 눈에 일본은 여전히 사랑스러운 국가다.

 

단 10초만에 느낀 7년 동안의 감정, 그것은 끔찍할 정도로 강했다. 그러니까 린리와 나는 바로 그것이었다. 우애를 나눈 사무라이들의 포옹. 그것은 멍청한 사랑 이야기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고결했다. 곧 두 사무라이가 포옹을 풀었다. 린리는 뒤도 돌아보기 않고 가버리는 훌륭한 센스를 갖고 있었다. 나는 눈이 눈물을 다시 삼키도록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나는 다음 사람을 위해 헌사를 써주어야 하는 사무라이였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다시 방문한 일본에서 첫사랑, 릴리와 재회하고 무미건조한 인사와 포옹을 나누는 것으로 이야기에는 마침표가 찍힌다. 깔끔하고 정갈한 마무리. 일본 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