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수레의 책읽기

[하멜표류기] 이세계 표류기 실사판

슬슬살살 2018. 10. 8. 21:56

판타지 소설이나 만화에서 자주 다루어지는 소재는 뭐니뭐니해도 이세계 탐험기. 별볼일 없는 주인공이 무림이나 판타지로 떨어져서 성장하는 에피소드는 유치하더라도 극단적인 대리만족의 엑스터시를 제공한다. 소설속에서나 나올법한 차원이동을 현실세계에서 체험한 이가 있었으니 바로 하멜이다. 안타깝게도 현실판의 이세계는 상상과 달랐다. 30여명의 동료 중 대다수가 사망했고 굶주림과 추위 속에서 노예처럼 버티고 버티다 겨우 탈출할 수 있었다. 폐쇄된 조선은 강한 군주국이었지만 이방인에게 따뜻한 곳은 아니었다.


겨울은 다가오는데 흉년때문에 여벌의 옷이 없었다. 다른 고장에 사는 동료들은 그곳의 작황이 한결 나아서 우리보다는 옷을 더 낫게 입을 수 있었다. 이를 좌수사에게 상신하여 3일간씩 교대로 우리들 중 절반은 일을 하고 나머지 절만은 식량을 구하러 다니도록 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멜 표류기는 글의 대다수가 그들의 가난을 다루고 있다. 애초에 이 책이 조선에 억류된 기간의 임금을 동인도회사에 청구하기 위함이었음을 감안하여 과장됨이 있을지라 할 지라도 풍족하게 지내지 않은 것만은 확실하다. 또한 언어적인 장벽도 낮지 않았다. 다만, 그들이 머물던 곳의 수령의 성품에 따라 가난의 크기가 늘거나 줄거나 했다는 걸 보면 좋게보면 지방 분권이오, 나쁘게 말하자면 기준 없음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멜 표류기는 조선에 머문 13년간의 기록을 담고 있다. 기억의 정확성, 문서의 목적등이 객관적인 기록으로 보기에는 어려운 정황이지만 이 글이 코레아를 최초로 서방에 알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갚다. 또, 정확치 않은 기록일지라 할 지라도 다른 자료들과의 교차 검증을 통해 당시의 시대상을 보다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게하는 귀중한 사료이다. 특히 함께 작성한 <조선국에 관한 기술>은 조선에 대해 흥미로운 사실들을 많이 알려주기도 한다. 시대를 뛰어넘은 기록들은 사극으로만 떠올리던 조선의 진짜 모습을 머릿속에 그릴수 있게 해 준다.

 
어느날 갑자기 이세계에 떨어진 이방인의 눈을 통해 바라본 우리네 조상들은 너무나 낮설고 어떤면에서는 야만적이기도 하다. 허나, 그런 중에서도 가지고 있는 조선의 통치철학, 합리성, 인간적인 면모 들은 조선이라는 나라를 실체화 시켜주는 좋은 바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