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말하는 개인주의란 유아적인 이기주의나 사회를 거부하는 고립주의가 아니다. 개인주의는 근대 계몽주의, 합리주의와 함께 발전하며 서구사회의 근간을 형성했다. 합리적 개인주의자는 인간은 필연적으로 사회를 이루어 살 수밖에 없고, 그것이 개인의 행복 추구에 필수적임을 이해한다. 그렇기에 사회에는 공정한 규칙이 필요하고, 자신의 자유가 일정 부분 제약될 수 있음을 수긍하고, 더 나아가 다른 입장의 사람들과 타협할 줄 알며, 개인의 힘만으로는 바꿀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타인들과 연대한다. 개인주의, 합리주의, 사회의식이 균형을 이룬 사회가 바로 합리적 개인주의자들의 사회다.
우리는 개인주의를 이기주의와 혼동하면서 안좋은 편견을 가진다. 특히나 '나'보다 '우리'를 우선시하는 한국인의 정서에서 '내' 중심으로 생활한다는 건 나쁜 사고방식이라 여긴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말하는 개인주의는 그런 부정적 의미가 아니다. 적어도 사회를 위해 희생하고 대를 위해 소를 포기해가며 발전하는 시대는 지났기에 이제는 새로운 가치관이 필요하다 말한다. 그게 바로 '합리적 개인주의'다.
저자 문유석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판사 작가'다. 본업을 두고 어설프게 쓰는게 아니라 본격적인 글쓰기를 하고 있고 소설 '미스 함무라비'는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 판사의 경험에서 나오는 깨알같은 법적 지식과 디테일이 살아있다는 평을 듣고 있고 글솜씨도 수준급이다. 물론 일류 작가에 대할 건 아니지만. 본인 역시 이를 잘 알고 있고 그야말로 좋아서 하는 일임을 누누히 밝히고 있다. 제대로 된 밥벌이와 좋아하는 취미로 부수익까지 올린다면 그야말로 부러운 삶이다. 심지어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직업이기가지 하니..
후배 세대의 위악은 선배 세대인 나 같은 사람들의 위선이 낳은 것이다. 열린 교육과 인간화를 주장하며 뒤론는 내 자식만 잘되라고 선행학습이라는 이름의 조직적 커닝을 시키느라 고전을 읽고 인간과 사회에 대해 고민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권위주의와 싸운다는 명분으로 막말과 냉소가 주는 쾌락에 도취했고, 그 결과 진보와 보수라는 탈을 쓴 반지성주의가 적대적 공생관계를 맺는 인터넷 생태계를 만들어냈다. 후배들에게 사과한다. 기득권은 다 누린 주제에 극심한 경쟁과 불투명한 미래에 좌절하는 후배들을 싸잡아 욕하는 선배의 일원이기에 말이다.
어쨌거나 저자 문유석은 '금수저'는 아닐지 몰라도 대한민국에서 상위 2~3%안에 들어가는 엘리트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런데 본인은 반성하고 있단다. 이 세상을 이렇게 만들어 놓은 건 선배들의 성과이자 과오라면서. 선배들은 권위주위와 싸우고 독재주의에 맞서고 산업화를 이룩하고 먹고 살 만한 대한민국을 만들어 놨다. 동시에 세계 최고 수준의 빈부격차, 사다리 걷어차기, 세대 갈등, 좌우의 분열, 후진 정치를 후배에게 함게 남겨 줬다. 문유석은 엘리트이자 선배로서 이 점을 콕 집고 있다. 우리가 남긴 좋은 건 받아들이고 틀린 건 후배들이 바로 잡으라면서. 이 책은 바로잡는 대안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다만, 똑바로 보는 법을 알려 준다.
발전기의 특징은 균등분배를 지향하는 토지개혁, 귀족의 세부담 증가, 국가 직영 최고 교육기관 확대 및 공정한 과거제도를 통한 신진 엘리트 등용에 있다. 패망기의 특징은 소수 귀족의 토지 사유화 증가로 인한 대농장화, 백성의 각종 세 부담 증가, 귀족 자제 중심의 사학 증가, 고위 관리 자제를 특채하는 문음, 음서제도 확대를 통한 지배 계급의 세습 구조 공고화, 과거제의 붕괴 등을 들 수 있다. 이 같은 병리 현상이 계속되면, 결국 사회적 불만이 극에 달해 민란이 일어난다.
문유석 판사가 바라 본 대한민국은 역사적인 맥락에서도 병리 현상이 진행중인 쇠퇴기의 사회 한 가운데 서있다. 이 책의 대부분은 본인이 그렇게 생각하게 된 수많은 에피소드들을 다룬다. 판사라는 직업은 사회적으로 가장 극단에 서게 된 인간을 대하는 직업이다. 그렇기에 다른 엘리트들 - 관료,의료인,기업인 들 - 에 비해 우리 사회의 병폐를 더 세밀하게 지켜 보게 된다. 물론 본인의 가치관과 법의 적용은 다른데다 시간이 지날 수록 무뎌지기야 하겠지만...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사회적 불만이 극에 달해 민란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문유석은 개인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주장한다. 대안은 아니지만 한 명 한 명이 합리적 개인주의자가 되어서 진실의 눈을 가지고 세상을 똑바로 바라보게 하는게 첫번째 할 일이다. 그렇게 되면 대안은 자연스레 찾아오게 된다.
인간이 저지르는 사건은 결국 인간 내면의 작용인데, 기자들은 주로 외형적 행위와 그 결과에만 치중하고 내면의 동기는 돈, 욕정, 복수심 등으로 간명하게 유형화한다. 사람들은 복잡한 사건을 쉽게 이해하길 원하고, 누가 나쁜 놈이고 누가 착한 놈인지 누구에게 분노하면 되는지 결론부터 알려주기를 성마르게 재촉하기 때문이다. 대중의 분노는 즉각적이고 선명한 정의를 요구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법관으로 일해온 경험에 비춰보면 실제 인간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 중 상당수는 인간관계도, 동기도, 선악 구분도 명확하지 않다. 신문기사처럼 몇 문장으로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 참 많다. 그래서 흔히들 생각하는 것과 달리 냉정한 '팩트'집합으로 보이는 신문기사보다 주관적인 내면고백 덩어리로 보이는 문학이 실제 인간이 저지르는 일들을 더 잘 설명해 줄 때가 많다. 작가는 최소한 자기 자신이라는 한 인간의 심층적인 내면세계를 관찰해서 쓰기 대문이다.
개인주의자는 기자가 아니라 작가가 되어야 한다. 팩트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그 안에 있는 진실을 바라봐야 한다. 복잡한 인간의 내면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개인주의자야말로 이 세상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개인주의자들이 늘어나고 서로 연대하는 세상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행복한 사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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