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부터 전 세계에서 시체가 하나 둘씩 살아나기 시작한다. 보통의 경우에는 이들이 다른 인간을 공격하고 세계가 혼란에 빠지는게 정설이지만 이 유쾌한 소설에서 그런 박진감 넘치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 이 좀비들은 잠시 되살아나서 놀라기는 하지만 인간과 똑같이 사고하고 생각하다가 몸이 완전히 썩어지면 영원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그러니 되살아났다기 보다는 유예를 받기 시작한 셈이다.
소설의 배경은 미국의 대형 기업형 공동묘지다. 이곳에서 부를 일군 스마일리 발리콘 가계의 인물들이 알수 없는 살인, 불륜, 상속따위에 얽혀가면서 사건은 고전적인 추리소설의 클리쉐를 충실하게 따라간다. 이 복잡하기 짝이 없는 사건에 뛰어든 이들은 시체들이 되살아나기 시작하면서 점점 혼란에 빠진다.
헛수고라. 그린은 마음속으로 쓴웃음을 흘렸다. 아까 워터스가 했던 말을 떠올렸던 것이다. 워터스는 죽은 사람이 줄줄이 되살아나는데 살인자를 찾아본들 무슨 소용이냐고 했다. 확실히 그랬다. 의미 없는 탐정 업무. 하지만 그것은 살인자인들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사람을 죽인 장본인도 저 아치에 있는 해골 조각과 마찬가지로 자기가 얼마나 부질없는 짓을 했는지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죽은 자가 되살아나는 이 세상에서 살인에 대체 어떤 의미가 있단 말인가.
추적이 의미가 없어진 시대에서 살인범의 추적은 진지하지 않고 유쾌하다. 펑크족인 덕분에 되살아난 것을 걸리지 않은 그린, 튼실한 펑크족 소녀 체셔가 주인공인것만 봐도 이 소설이 진지할리가 없지 않은가. 제대로 된 경찰도 없다.
"이게 무슨 꼴이야. 이렇게 끔찍한 사건이 또 있을가? 살아있는 놈들과 죽은 놈들의 사고가 배배 꼬인 것도 모자라, 범인도 피해자도 목격자고, 게다가 탐정까지 시체라니! 나는 이제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너무너무 비참해."
트레이시 경감이 이 사건을 맞게 되지만 이 경찰의 고리타분한 수사 방식은 되살아난 시체들에게는 하나도 적용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야기 전반에 묻어있는 슬랩스틱 코메디-소설에서 이런게 가능할 줄은 몰랐다 - 와 블랙 조크가 이 소설을 반짝반짝하게 만들어 준다.
삶과 죽음은 표리일체. 삶을 생각하는 일은 죽음을 생각하는 일, 죽음을 생각하는 일은 삶을 생각하는 일. 우리도 다들 살아 있는 시체라네. 되살아난 시체들은 중세의 트란지 입상처럼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는 게야. 삶과 현세에 아무리 집착한들 언젠가는 이렇게 티끌이 되고 만다고 말일세. 이게 바로 20세기의 '메멘토 모리' 아니겠나. 우리 모두 집행유예 중인 시체에 지나지 않는다네
이 소설이 되살아난 시체와 이로인한 사건, 추적만을 다루고 있는 건 아니다. 사회 전반적인 장례문화와 죽은이를 대하는 태도들은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철저하게 일본식이다. 범인을 잡기보다는 죽음에 대한 고찰을 유머와 현학을 토해 찾아가게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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