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로 놀라운 충격을 먹였던 스콧 스미스의 데뷔작이다. 두 번째 작품인 <폐허>가 가진 미칠 듯한 공포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이 작품 역시 심리적인 옭아맴이 장난이 아니다. 우연찮게 큰 돈을 찾아낸 이들이 이 돈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선택들을 하고 그 하나 하나가 조금씩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흐르면서 평범했던 남자는 수 명의 사람들을 살해하는 연쇄살인마가 되어버린다. 친구, 형, 이웃, 보안관에 이르기까지 한번의 실수는 도저히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피더슨을 스노모빌에 태우고 집까지 데려간 귀 보안관에게 전화를 건다. 보안관에게 모두 털어놓고 돈을 신고한다. 그렇게 한다면, 내가 완전히 정직해진다면, 그리고 피더슨이 형에게 당한 폭행을 견디고 살아남는다면, 나는 징역 선고는 면할 가능성이 높지만, 형은 면하기 힘들 것이다. 보안관은 다리로 사람을 보내서 형을 데려올 것이다. 형은 폭력 혹은 살인 미수로 기소될 것이다. 감옥에 가게 될 것이다. 어쩌면 형기가 길지도 모른다. 그리고 돈은 사라질 것이다. 물론 다른 길도 있었다. 이미 준비된 길, 이미 반쯤 걸어간 길이었다.
물론 선택할 수 있는 기회는 있었다. 애초부터 돈에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면 좋았겠지만... 당연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사실, 살인까지는 아니어도 우리는 작은 거짓말 하나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걸 수십번이나 보고, 듣고, 행해 본 적이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은 강한 흡입력을 가진다. 나라도 그런 큰 돈 앞에서 선택했을지 모르는 여러 선택지는 필연적으로 살인에 살인을 부르고 수습불가에 이른다.
우리 두 사람 사이에 놓인 간극을 깨닫게 되니 끔찍했다. 한 번 크게 펄쩍 뛰어서 그런 간극을 만든 것이 아니었다. 거의 감지할 수 없는 작은 발걸음들이었고,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가 얼마나 멀리 왔는지 정말이지 전혀 못 알아차렸다. 우리는 서서히 여기까지 왔다. 크게 변한 것도 없이 여기까지 왔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은 평범한 소시민이었던 아주 극초반을 제외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범죄자다. 그렇기 때문에 잡고 잡히는 추리소설과는 다르다. 작은 소시민적인 욕심과 그로 인한 작은 거짓이 얼마나 무시무시하게 자라나는지가 포인트다.
내가 형을 쏜 것은 형이 정신 나가기 직전이었기 때문이며, 그것은 내가 소니를 쐈기 때문이며, 그것은 내가 낸시를 쏜 것을 숨겨야 했기 때문이며, 그것은 낸시가 나를 쏘려 했기 때문이며, 그것은 형이 루를 솼기 때문이며, 그것은 형이 루가 나를 쏘려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며, 그것은 루가 엽총으로 나를 협박했기 때문이며, 그것은 내가 루에게 드와이트 피더슨을 죽였다고 자백하도록 속였기 때문이며, 그것은 루가 나를 협박했기 때문이며, 그것은 내가 여름 전까지는 루에게 루의 몫을 주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며, 그것은 내가 비행기를 찾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며.......
주인공은 변명한다. 그리고 그 변명은 욕심을 부리는 우리가 스스로에게 내리는 변명과 놀랍도록 닮아서 무섭다. 이 소설이 스릴러일 수 있는 이유는 조여오는 주변 상황과 살인마로 변해가는 주인공이 아니라 읽는이가 동일한 선택지에 동그라미를 치는 상황들일 것이다. <심플 플랜>은 독자를 연쇄살인마로 만드는 계획이었던 거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자신의 범죄를 정당화한다. 내가 아닌, 아내와 아이를 위해서 스스로를 희생한 것이라고 합리화한다.
주인공의 합리화가 곧 나의 합리화가 되고 주인공의 살인이 곧 나의 살인이 되는 놀라운 작품이다. 도저히 빠져나갈 구멍이 없어서 <폐허>가 힘들었다면 <심플 플랜>은 빠져나갈 구멍이 있지만 선택할 수가 없어서 고통스럽다. 작품이 많지 않아 슬픈 어마어마한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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