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실화다. 1938년 이탈리아는 무솔리니 체제 안에서 전 세계와 전쟁을 벌이고 있었고 펠리체 베누치는 에티오피아에서 영국군의 포로가 되어 케냐산이 보이는 수용소에 갇히게 된다. 그곳에서의 끝없는 무료한 생활에서 베누치는 탈출하여 해발 5천 2백미터의 케냐산을 등정하는 계획을 세운다. 산을 넘어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정상을 밟고 다시 돌아오겠다는 미친 계획을.
하지만 이름을 알 수 없는 포로여, 당신은 죄를 짓고 감옥에 갇힌 자와 전쟁 포로가 서로 얼마나 다른지 모르는가? 전자는 그 형량이 얼마나 되건 자유의 몸이 될 정확한 날짜를 안다. 반면에 우리는 그렇지가 않다. 이놈의 전쟁이 얼마나 더 지속될지, 우리가 받은 형기가 얼마나 더 연장이 될지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일본군이나 인민군의 기억으로 포로가 된다는 것에 어마어마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지만 1938년도의 포로수용소는 그 정도까지의 분위기는 아니었다. 붙잡힌 군인들은 넓은 토지에서 무한정 갇혀있는데 하기야 영국군도 이들을 괴롭힐 하등의 이유가 없다. 때문에 포로 생활의 고통 보다는 무료함 때문에 이런 선택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베누치는 이 등반을 함께 할 두 명의 동료를 고르고 무려 88개월 동안이나 등정을 준비한다. 음식물을 모으고 열악한 수준의 등반장비를 만들어내면서 하루하루 준비를 해 나간다. 이 책에서는 그 모든 과정을 기록해 놓고 있는데 어쩌면 등반이 아니라 그 준비 과정이 이들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뭐라도 견딜 수 있고 말고. 과거뿐만 아니라 미래의 모든 고통까지도.
무사히 수용소를 탈출해 포로수용소를 나와 케냐산의 초입에서 그 아름다움을 마주한 세명의 포로는 감동에 겨워서 고통을 잊는다. ‘과거뿐 아니라 미래의 모든 고통까지’ 잊게 할 만큼 그곳은 아름다웠다. 책의 중후반부는 등반하는 며칠 동안의 이야기가 재치 있게 실려있는데 모든 고통과 경험들이 낭만적으로 각색되어 있다. 실제의 고통은 이정도가 아니었겠지만 세월이 흘러 기억을 되살릴 때에는 훨씬 아름다운 장면으로 변경되었다. 그 정도로 그곳을 만난 감동이 뇌리에 남았다.
정말로 우리가 저기에 갔다 온 걸까? 모든 게 한 자락 꿈은 아니었을까?
간혹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꿈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꿈은 아니지만 비현실적인 경험은 인생을 더욱 멋지고 아름답게 만든다. 가끔은 무료한 삶에서 눈을 들어 나만의 케냐산을 바라보고 준비하고 등반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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