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惡을 징벌하는 파이로매니악. 인간시장을 떠올리게 한다.
국내 최초의 밀리언셀러가 어떤 책인지 아십니까. 김홍신 작가의 <인간시장>이 83년 국내 최초로 100만부를 돌파하면서 최초의 밀리언셀러라는 영광스러운 수식어를 달았습니다. 현재까지 430만부가 팔렸다고 하니 이정도면 인기있는 수준이 아니라 신드롬 내지는 광풍이라는 표현이 맞겠지요. 대략적인 내용은 현대판 홍길동인 주인공 장총찬이 사회 부조리에 맞선다는 이야기인데 당시 사회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실명까지 거론하고 있어 작가는 갖은 협박을 받았다고 합니다. 장총찬을 자칭하는 사람들까지 나타날 정도로 이슈였지요. 파이로매니악은 인간시장에서처럼 사회 부조리와 맞서 폭탄을 통해 권선징악을 행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2. 생소한 소재, 폭탄
이 이야기를 하기 전에 작가 이우혁의 이력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분은 소설가로서는 특이하게도 서울대 공대 석사출신의 다소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이야 인터넷의 발달로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작가의 길을 걷는 분들이 많이 계시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흔치 않은 케이스라 할 수 있습니다. PC통신이 등장하면서 가능했던 일이지요. 어찌됐건 공대 출신이다보니 나름대로의 전문적인 접근이 가능하고 참신하기도 한 폭탄이라는 소재를 다루었던 것 같습니다. 주인공인 민동훈은 폭탄 전문가로서 발군의 능력을 가지고 있고 기자출신인 유영은 행동대장으로서 역할을 소화하면서 파이로매니악이라는 팀이 이루어집니다. 폭탄이라는 흔치않은 소재는 이 이야기에 아주 걸맞는 재료가 되었지요.
#3. 징벌자의 인간적 고뇌
인간시장을 비롯한 이전의 권선징악 스토리와 다른점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파이로매니악팀은 폭탄으로 사회의 惡에게 징벌을 가합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인간적인 고뇌를 하게 되는데 과연 악인이라 해서 사회적 합의인 법을 통하지 않고 징벌하는 것이 온당하냐라는 딜레마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같은 주제는 최근에 벌어진 가해자의 얼굴공개, 성범죄자의 신원 공개 같은 사회적 이슈와도 연결됩니다. 주인공들은 자기 자신의 몸에 1년 기한의 시한폭탄을 장치하면서 이 같은 딜레마에서 빠져나오려 합니다. 그럼에도 이들의 인간적인 고민은 계속 되지요.
#4. 당시의 시대상을 보여주는 ‘죄수’들
이들이 징벌하는 대상을 소설 내에서는 ‘죄수’라 부릅니다. 이 ‘죄수’들을 살펴보면 당시의 시대상을 알 수가 있는데, 식민사학의 거두, 편협한 언론사의 사주, 고문기술자, 사회복지재단의 악덕 이사장, 군납비리 장성, 부실시공업자 등이 그들입니다. 이 책이 나온 시기가 90년대 말 무렵인데 당시에 일어났던 사건들을 살펴보면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체포, 민주정부 출범 등이 있습니다. 따라서 당시 최고 이슈였던 사회문제에 대해 작가 나름대로의 철퇴를 내린 셈입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에서 살펴보면 귀여운(?) 수준입니다. 만약 이 책이 지금 쓰여졌다면 아동성범죄, 왕따 가해자, 묻지마 폭행 등을 대상으로 해야 할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찌됐건 파이로매니악 팀은 높은 수준의 폭탄 기술을 통해 사회악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가고 이에 대응해 검경찰에서는 윤영대 검사를 중심으로 하는 특별수사팀 시저(Scissors: 가위)팀을 구축합니다.
#5. 미완의 완성작, 파이로매니악
이 작품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입니다. 3권까지 나왔지만 앞서 얘기했던 시저팀이 파이로매니악팀의 소재지를 파악해 포위하는 것 까지만 전개됐고 그 이후로는 출간되지 못했습니다. 출판사와의 계약문제 때문이라고 하는데 많은 인기 장르소설들이 이러한 이유로 완결되지 못하는 경우가 꽤 많은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비뢰도나 묵향도 이런 케이스로 알고 있는데 아니라면 죄송합니다.) 어찌됐건 이 작품은 3권을 끝으로 10년이 넘도록 중단된 상태입니다. 다른 작품이야 늘어지더라도 작가가 생존해만 있다면 끝마쳐질 소지가 있지만 사회적인 현상을 배경으로 하는 현대물은 이 기간이 길면 길수록 이야기의 연계성이 떨어져 재출간하는 것이 어려워진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4권이 나올 확률은 굉장히 낮아 보입니다. 개인적 의견이기는 하지만 그간 이우혁 작가님의 책들이 항상 결말 부분에서 많은 논란을 가져온 것을 생각하면 미완은 미완인대로 남는 것도 괜찮겠다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네요. 아직 완결을 짓지는 못했지만 한번쯤 읽어볼 만한 작품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파이로 매니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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