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삼매경

<노팅힐> 비현실적이지만 좋은 이유 세가지

슬슬살살 2012. 3. 30. 17:00

"비현실적이지만 좋았다"

 

영화 초반 대커(휴 그랜트)가 탑스타인 애나(줄리아 로버츠)를 우연히 만나게 됐을 때 했던 대사인데 이 대사가 곧 영화에 대한 나의 감상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비현실적이지만 좋은 영화다. 사실 신분의 격차를 극복하는 사랑이야기는 그 대상이 탑스타이건 돈많은재벌이건 왕비건 공주건간에 이 영화가 나왔던 시대를 생각하더라도 그리 신선한 기획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노팅힐은 로맨틱코미디를 이야기할 때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영화중 하나이다.

 

왜 이 평이한 영화가 그리도 재밌는 걸까?

 

1. 평범한 주인공과 평범한 스타

 

대부분 이런 스토리의 영화에서 주인공은 탑스타이다. 신분이 상대적으로 높은 사람이 이야기의 주도권을 끌고 나가는데 그 반대의 경우라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이야기의 전개는 신분이 높은 사람을 중심에 놓는다. 예를 들면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 현빈의 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한다던지, 가난한 주인공이 신분이 높은 사람의 생활을 겪으면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들, 그 반대의 경우도 신분이 높은 사람이 서민 체험(?)을 하면서 벌어지는 재밌거리들 등이 주 볼거리가 된다. 한마디로 사는세계가 다른 사람이라는 전제하에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게 대부분인데, 이 영화는 전혀 그렇지 않다. 애나는 영화 한편으로 1,500만달러를 벌어들이는 대 스타이지만 영화내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정도를 제외하고는  영화 내내 한명의 인간으로서 조명된다. 물론 지금과 비교하면 핸드폰 하나 없이 혼자 다닐 수 있는 탑스타라는 것이 그리 와닿지는 않지만, 아무튼 애나는 탑스타로서의 가치가 아닌 한명의 여자로서 대커의 삶 속으로 들어온다. 그러한 장치들이 이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인간세상(?)에 걸맞는 이야기로 다가오게 만든다. 신데렐라를 만들어 내지 않은 <노팅힐>은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억지스럽지 않게 만들어낸 영화다.

 

2. 영국에 온것 같은, 영국인 친구를 둔 것 같은 친근하고 예쁜 볼거리

 

영화야 늘 볼거리들이 많지만 아름다운 영국의 노팅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영화는 그런 것들이 더 많다. 특히 한국인이 볼 때에는 더 이국적인 색채가 강한 것도 있지만.. 아무튼 왠지 고풍스러운 이미지를 가진 노팅힐의 곳곳은 너무나도 예쁘다. 대커가 월 380파운드의 적자를 내고 있는 여행전문 서점마저도 돈만 있으면 인수하고 싶을 정도로 영화에 나오는 모든 장소가 멋지다. 로맨틱 코미디라는 것이 약간의 판타지적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영화인걸 감안한다면 촬영지가 보여주는 색다름은 분명히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다. 또, 조연들과의 관계와 이야기들 또한 재미있는 요소들 - 애나의 남자친구로 깜짝출연한 알렉 볼드윈이라던지, 가짜 기자 행세를 하던 대커가 인터뷰하던 스타들. 대커와 동거하던 친구와 그냥저냥 살아가는 런던의 소시민들 - 의 모습과 그들 특유의 유머감각같은 것들은 영화를 더욱 예쁘게 만들었다. 진짜 그런지 모르겠으나 대스타를 눈앞에 보고서도 점잔빼다 뒤에서 환호하는 서양인들의 자연스러움이 상대적으로 멋져 보이기도 했다. 물론 로맨틱 코미디의 황태자인 휴 그랜트의 풋풋한(?) 모습과 개인적으로는 가장 아름다웠을 때의 줄리아 로버츠을 볼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3. 마지막으로 누구나 인정하는 OST

 

다음 평점 9점으로 보아서는 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많은 것 같지만 분명 별로라 생각했던 사람들도 있을터.. 하지만 누구나 인정하는 것은 바로 이 영화의 OST이다. 메인 테마인 'She'가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그 외의 음악들이 모두 그냥 걸어놔도 충분히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할 만한 음악들이다. 이런 음악들이 앞서 말한 이국적이고 예쁜 영상과 함께 들리니 아무리 삼류 스토리라도 예쁘게 보일 수 밖에 없다.

 

손발 오글거리는 장면이나 대사하나 없이(물론 마지막 기자회견신은 좀 그런면이 있었다), 분위기와 영상, 음악만으로도 충분히 예쁜 영화다. 혹자들은 이 영화를 '사랑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영화'라고 했다는데, 연인과 함께 보면 조금 오글오글하기는 하겠다.

 

 


노팅 힐 (1999)

Notting Hill 
9
감독
로저 미첼
출연
줄리아 로버츠, 휴 그랜트, 리처드 맥케이비, 리스 이반스, 제임스 드레이퍼스
정보
코미디, 로맨스/멜로 | 영국, 미국 | 123 분 | 1999-07-03
글쓴이 평점  

 

 

PS1. 어릴 때 많이 들었던 보이존의 목소리가 있었던 것 같아서 찾아보니 'WHEN YOU SAY NOTHING AT ALL' 이라는 곡을 보이존 출신의 로넌 키팅이 불렀다.

     2. 줄리아 로버츠가 활짝 웃을 때 인중 부분이 가로로 접히는걸 이제야 알았다. 상당히 특이한걸..  

     3. 다른 리뷰들을 읽다보니 <노팅힐>이 별로 였다는 사람들 대부분이 두 주인공이 만난지 30분만에 키스하는걸 두고 말도 안된다고 분개하는데, 사실 정상적으로 둘이 만나서 연인으로 발전하는건 더 현실성이 떨어진다. 차라리 한눈에 반하는게 더 현실적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