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2013년 들어 가장 더웠으리라 생각되던 날, 시원한 한강 바람과 함께라면 좀 나을까 싶어 선유도를 찾았다. 한번도 가본적은 없지만, 머릿속에서 시원한 느낌이어서 강바람이 살랑거리고 수풀 우거진 시원한 공원을 상상하며..
가뜩이나 아가가 고열에서 해방된 직후여서 열꽃이 가득 핀 것도 좀 나아질까 하는 마음도 있었고..
땡볕 주차장에 주차하고 차에서 내리니 숨이 컥컥 막힌다. 우산이라도 꺼내야 하는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조금 걷다보니 선유도로 들어가는 다리가 보인다. 아하 저걸 건너가야 하는 건가 보구나..
그늘이라고는 내 발밑의 한조막 외에는 없는 그야말로 한낮이다. 왜 그런거 있잖아.. 너무 더우면 비현실적인거..뭔가 움직이기는 하는데 비현실적이다. 공원을 건너가니 푸른 숲이 보이지만 이 더위에 정면승부하기에는 역부족이다. 2000년 입대해서 훈련을 받던 시절의 더위가 딱 이런 느낌이었다. 비현실적이면서 저항의 의지가 보이지 않는... 그렇지만 13년 후의 더위는 여러가지 피할 여력이 있단 말이지..
예를들면 노천에 있는 카페에서 천원짜리 음료수와 무기같은 핫도그를 먹으면서 땀을 식히는 것 처럼..
물론 이 카페 옆에 있는 실내카페로 들어가서 9천원짜리 돈가스를 두개 먹는다면 에어콘도 느낄 수 있지만.. 그 건물 벽에는 이렇게 쓰여있는 것 같이 보여서 섣불리 들어갈 수가 없다. '여기 음식은 무지하게 비싸지만 맛은 절대 보장 못한다. 에어콘이 필요하다면 나에게 눈탱이를 맞아라'.
더위를 이길 수 없는 파라솔에서 소음에 가까운 음악과 함께 어떤 커플이 핫도그를 한잎 먹고는 바닥에 떨어뜨리는 걸 본다. 가게주인이 한 개 더 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애처로운 웃음만 보내고 있는 커플들을 보면서 시간을 때우니 그나마 조금 시원해 진다.
들어와서 안 건데, 선유도는 일반적인 한강공원과는 컨셉이 좀 다른 것 같다. 입구쪽에서야 그늘막과 텐트 같은 걸 치고 뒹굴 거릴 수 있는데 선유도 자체는 더위보다는 예쁨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다. 아니면 내가 간 오늘만 우연히 찜통이 되어 버렸던지..하기는 그 예쁨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의 더위기는 하다. 위 사진처럼 쥐똥만큼의 그늘만 나의 갈길을 인도한다.
섬 한켠에는 아주 조그마한 어린이용 물놀이 장소가 마련되어 있지만, 채니가 이용하기에는 아직 너무 어리다. 입맛만 다시면서 앉아 있자니 옆에 앉은 한 아줌마가 조심스레 물어본다. 아가가 아토피인가봐요.. ㅜㅜ
그냥 열꽃인데, 기분이 나쁘다.. 한두차례 그소리 듣고나니 아토피 아가들 부모님들 스트레스 엄청 받겠다는 생각이 든다.
늘어진 개마냥 혓바닥을 빼어물고 섬 안팎을 헤메면서 피아노를 배웠으면 좋았을텐데라는 엉뚱한 생각을 잠깐 하고 있을 때 강가를 향하고 있는 정자가 눈에 들어왔다. 기저귀나 갈까. 하고 앉았는데 아..
여기가 명당이구나. 여기였어. 선유도의 진짜는.. 이곳의 시원함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정자의 시원함이다. 물론 같이 정자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긴 하겠지만.. 그래도 유람선이 떠있는 서울의 강을 바라보는 정자라는것이 쉽게 있는건 아니잖아..
이렇게 오늘도 분유를 먹이면서 하루가 마무리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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