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빈치 코드>의 성공 직후 전 세계적으로 음모론 열풍이 불었고 이 책 역시 그 바람을 타고 우리나라에 소개 되었다. 이렇게 유행을 따르는 경우 졸작으로 쓰여지는 경우도 있지만, 저자인 필리프 반덴베르크의 경우 훨씬 예전부터 이 바닥에서 활동하던 작가다. 우리나라에서는 댄 브라운 덕택에 재조명을 받은 케이스이기는 하지만, 필력과 구성에 있어서는 사실 댄 보다 한 수 위이며, 유럽쪽에서는 나름 서브컬쳐쪽에서 꽤나 유명인사다.
인쇄술의 발명에 대한 이야기를 메인테마로 해서 한 개인의 사랑과 인쇄술 주변의 음모들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 하고 있다. 그렇지만 다른 음모소설과 확실하게 다른 것이 일단 주인공이 당시 시대의 사람이다. 현대의 인물이 과거의 비밀을 밝혀내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상황을 마치 작가가 본것 처럼 가상의 역사를 기술하는 것이기에 독자에게 다른 반론을 제기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미 그 시대를 엿보고 있는 독자로서는 훨씬 몰입도 있게 이야기를 따라 갈 수 있는 것이다.
감옥에 갇혀 있는 미헬 멜쳐라는 노인의 회상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독일 마인츠의 거울 수공업자였던 미헬 멜쳐는 데리고 있던 도제 겐스플라이슈로부터 사기를 당하고 벙어리 딸 에디타와 함께 콘스탄티노플로 향한다. 부유한 콘스탄티노플의 상인에게 에디타를 시집보내기 위함이었으나 뜻대로 되지 않고 오히려 에디타는 아버지의 뜻을 오해하고 도망을 친다. 미헬 멜쳐는 우연치 않게 중국인들로부터 활자에 대한 비밀을 얻게 되고 역사의 주변인물에서 핵심인물로 급부상한다.
면죄부를 찍어내려는 교황측과 교황 반대파들, 성서를 찍으려는 세력과 이단세력등이 서로 얽히고 섥히면서 미헬멜쳐의 주변에 끝없는 사건을 일으킨다. 또한 시모네타라는 집시여인까지 그에게 접근해 사랑에 빠지게 하면서 서스펜스 첩보극에 로맨스까지 추가가 된다. 한마디로 독자를 잠시도 쉬지 않게 하는 매력이 이 책에는 있다. 특히나 중세의 대도시들의 모습을 너무나도 완벽히 묘사해 내어서 소설이 아닌 기록을 읽고 있는 기분이 들게 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미헬 멜쳐는 이단 종교집단에 잡혀있는 시모네타를 구해내기 위해 이단 성경을 찍는 일을 하게 되고 동업자인 겐스플라이슈(미헬이 콘스탄티노플로 가게 했던 당사자, 미헬이 용서하고 그와 동업한다)에게는 교황청의 성서를 찍는 일을 맡긴다. 한번 배신한 사람은 다시 배신하는 법. 겐스플라이슈는 미헬을 교황청에 밀고하고 그 자신은 성경을 최초로 인쇄한 인물로 역사에 남는다. 그리고 이름을 귀족식으로 바꾸는데 바로 구텐베르크다.
잘못하면 진실로 믿을 것만 같이 개연성 있는 전개다. 사실 수공업자였던 구텐베르크가 성격이 어쨌는지 알 도리가 없고 그다지 많은 기록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나 지난 1,000년동안 가장 혁신적인 발명을 꼽으라면 단연 인쇄가 탑인 만큼, 작가가 지어낸 이 비밀이 가지는 파급력 또한 상당하다. 물론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는 우리나라의 직지이기는 하지만 정확한 개인의 이름이 기록되었다는 점에서 구텐베르크의 명성은 후대에도 계속 될 것이다. 또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책. 성서를 찍어내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단순한 재미 뿐만 아니라 인쇄술이 가지는 의미와 파급력 등 또한 충분히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훌륭한 소설이다. 다만, 벙어리 딸 에디타나 떠돌이 의사 마이텐스와 같이 의미없는 주변인물들의 묘사가 많은 것이 조금 지루할 수도 있다.
'열수레의 책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7퍼센트 용액] 홈즈, 프로이트를 만나다. (0) | 2013.08.31 |
---|---|
[비정근] 비정규직 교사 캐릭터를 만들어나가는 히가시노의 습작. (0) | 2013.08.28 |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사람들] 감동의 대리소비를 위해 억지로 엮여진 이야기들. (0) | 2013.08.24 |
[시크릿] 성공한 사람은 저자 뿐 (0) | 2013.08.09 |
[가족기담] 가족이라기 보다는 차별에 대한 고전적 서술 (0) | 2013.08.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