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수레의 책읽기

[가족기담] 가족이라기 보다는 차별에 대한 고전적 서술

슬슬살살 2013. 8. 6. 22:52

옛 동화나 구전전승 설화 등에서 숨겨진 코드를 읽는 식의 기획은 간헐적으로 있어 왔다. 주로 성적 코드나 정치적 비유 등을 끌어 들이기도 하고 사회문화적인 해석을 덧붙이는 수준이면 그럭저럭 괜찮은 정도로 인식 되곤 한다. 이 책은 우리네 고전을 통해서 사회적 특정 집단. 즉 가족에 대한 비판을 시도한다. 모성애가 만들어진 가치관이라는 주장도 존재하는 마당에 이런 기획이 참신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쉽게 건드리기 어려운 가족이 개념에 대해 돌을 던지려 한 점은 용감한 시도다. 

 

다만, 8개의 챕터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의 목표가 일관되지 못하고 예시로 든 수많은 고전들이 이 책의 표지가 말하고 있는 은밀하고 오싹한 가족의 진실을 이야기하는데에는 적절하지 못하다는 점은 아쉬움을 던져준다.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이 페미니즘, 여성에 대한 차별을 다루고 있는 것도 한몫 거든다.  

 

총 9개의 챕터 중에서 이 책을 고른 이들이 기대했던 이야기는 고작 2~3개의 챕터에 불과한 것 같다. 1장의 자식에 대한 부모의 폭력과 8장의 쥐뿔 이야기 정도가 기억에 남고 2장 여우누이 이야기에서 자식에 대한 교육론을 도출하는 과정은 논리비약이 심하다. 또한 심청전·흥부전에서 뽑아낸 무능 가장 이야기나 9장의 야래전 이야기 같은 경우는 글 전체 흐름에서 붕 떠 있다. 집중된 한권의 책이 아닌 블로그에 연재하는 컬럼 같달까..

 

너무 안티한 의견만을 개진하긴 했지만 전체적인 개연성을 무시하고 분리된 한개 한개의 챕터는 한번쯤 곱씹어볼 만 한 이야기이니 너무 부정적으로 볼 것은 아니다. 고전의 행간을 읽고 작가의 시각으로 해석한 글이라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충분히 아..그래~ 하고 넘어갈 수 있는 재미있는 주장들이다. 

 

챕터별로 자세히 살펴보자면,

1장. 우리 이 애를 묻어버립시다. / <손순매아>, <장화홍련>에서 읽어낸 孝문화의 잔인함과 패륜적 성범죄 의혹 제기

2장. 어린 누이는 사람먹는 괴물이 되었다. / <떡장수 엄마>와 <여우 누이>에서 찾아낸 잘못된 자식관1

3장. 내 오늘 좋은 꿈을 꾸었단 말이다. / <홍길동전>, <구운몽>, <춘향전>에 나오는 처첩제의 비판. 정확히는 처첩제가 한정된 감투를 지키기 위해 정착된 체제라는 주장을 내세우지만 그다지 신뢰가 가지는 않는다. 

4장. 과거를 묻지 마세요. /  <구운몽>, <옥루몽>에서는 남성의 독점욕에 따른 억압받는 여성을 다룬다. 2

5장. 저년을 잡아 내려라. / <사씨남정기>, <옥루몽>을 다시 다루면서 여성의 욕망을 다룬다. 여기까지 오게 되면 벌써 3개의 챕터를 여성 억압에 대한 이야기로 채운 셈이다. 물론 다음챕터도 유사하기는 하지만...  다시한번 짚고 넘어가건데, 이 책은 당초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다 했었다.

6장. 쓸모없는 지아비는 따르지 마라. / <흥부전>, <변강쇠전>, <심청전>에서는 무능한 가장은 쓸모 없다는 이야기를 전개시키면서 그래도 눈뜨겠다고 황궁까지 걸어간 심봉사에 한표를 던지기도 한다. 여기에 덧붙여 장애에 대한 사회적 관념까지 살짝 꼬집는다.

7장. 어찌 과부라고 해서 정욕이 없겠는가. / <열녀함양박씨전>에서는 만들어지는 열녀와 억지로 죽어야 했던 비운의 여인들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런 이야기는 새삼 신선한 이야기는 아니다.

8장. 쥐뿔도 모르는게. / 개인적으로 가장 신선했던 소재다. 쥐뿔, 개뿔 했던 말들의 어원이 성기를 지칭함과 동시에 <손톱을 먹은 쥐 이야기>에 숨겨져 있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옹고집전>을 함께 다루면서 거기에 숨겨진 성적 코드까지도..

9장. 너 원한 적 없어. / <야래자설화>, <최고운전> 뜬금없이 작가의 이상적인 가족관을 표출하는데 쓰여진다. 새로운 질서를 세울 수 있도록 아이가 우리를 배반할 수 있게 키우자는 주장은 일견 이해는 가지만, 이 장에서 소개한 고전과는 비약이 좀 있는 것 같다.

 

 

PS. 쥐뿔도 모른다는 말의 어원에 성적인 코드가 숨어 있다는 사실은 이 책에서 가장 흥미 진진한 이야기였다.  

     또, 책 중간중간 작은 오브젝트를 그려 놓은 건 그래도 책값은 하는 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이런거 너무 좋아.

 

 


가족 기담

저자
유광수 지음
출판사
웅진지식하우스 | 2012-07-25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아름다운 옛 이야기 속에 감춰진 불편한 진실!고전이 감춰둔 은밀...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1. 여기서부터 훈계모드로 변신한다. [본문으로]
  2. 이게 뭐임? 가족을 다룬다 해 놓고 갑자기 페미니즘이라니?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