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삼매경

[전국노래자랑] 공식을 따랐지만 점수는 안나오는 불운함

슬슬살살 2014. 7. 15. 23:14

이번에는 망한 영화다. 퀴즈쇼나 오디션 프로, 라디오는 종종 영화 소재로 쓰였지만 대한민국 최장수 프로그램이자 최장수MC(나이로도 장수 MC)를 보유한 전설같은 프로그램이 영화소재가 될 줄은 예상 못했다. 참고로 송해 할아버지 나이가 90이다. 90. 전 세계적으로도 기록이 아닐까 싶은데 더 후덜거리는 사실은 이 프로그램의 평균 시청률이 12.5%라는 점이다.(2014년 7월 15일 기준) 무한도전을 뛰어넘는 엄청난 고정 시청층을 확보하고 있는데다 복면달호로 한차례 히트를 친 이경규의 신작 영화라는 점도 미디어의 관심을 끌었다. 스타배우가 없다는 단점도 있었지만 나름 독특한 팬클럽을 확보하고 있는 류현경과 김인권의 조합도 나쁘지 않았다. 김인권의 코미디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기에 손익분기점은 넘었을 줄 알았는데 영진위 기준으로 978,431명으로 마감했다. 김인권의 전작인 <방가방가>가 972,431명이었으니 정확히 6천명이 증가한 것.(단독주연으로는 97만이 한계인 것인가) 

 

영화를 찬찬히 보면 왜 망했는지 알 수 있다. 전개도 엉성하고 주인공인 봉남(김인권)의 '꿈 바라기'도 가슴에 절절히 와닿지 않는다. 오히려 오현경과 김환희의 '할아버지와 손녀의 가슴절절한 내리사랑 이야기' 신파가 식상함에도 가슴을 울렸다. 정력제품 여심 홍보차 노래자랑에 도전한 유연석과 이초희 커플도 설정은 이상했지만 나름 잘 어울렸고 이초희의 불쌍한 연기도 재밌었다.(그렇지만 절대 공감가지는 않았다). 류현경 역시 상투적인 캐릭터에서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한걸 보면 역대 한국영화에서 정형화된 모든 캐릭터가 총 집결한 모양새다. 심지어 말장난 개그도 진일보하지 못했다. 그나마 기억나는 건 봉남이 미애(류현경)에게 폴포츠를 영국노래자랑 우승자라고 소개할 때 정도?!. 그렇지만 그것도 억지스러운게 극중 나이가 폴포츠를 모를 나이도 아니고, 요즘 시골사람들이 그렇게 어리숙하지도 않다. 오히려 오광록의 시골 공무원 역할이 더 리얼했다. 보고하는 방식이나 설정이 연구를 많이 한 듯 했다. 그 외에는 ㅜㅜ. 대단한 제작비를 들인 것도 아니고 화려한 볼거리가 있는 것도 아닌 이상 캐릭터로만 밀고나갔어야 할 영화에서 고릿적부터 써먹던 캐릭터를 그대로 들고 왔으니 재미가 있을리 없다.(상투캐릭터의 어벤져스?) 

 

그래도 이 영화는 볼만하다. 관객 수 대비 다음이나 네이버의 평점을 보면 나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이 꽤나 됨을 알 수 있다. 한국식의 과도한 오버웃음은 최대한 절제 했으며, 그래도 우리 삶 속의 인물들을 담아냈다.(그러니까 정형화된 캐릭터다. 맨날 보는 인간들이니 정형화 된거지..) 우리 주변에서 그나마 스토리가 있는 사람을 찾아보면 다 저 정도다. 부모 이혼해서 할아버지랑 살고, 셔터맨으로 살고.. 다른 영화에서처럼 전과자 한명 보기 힘든게 현실이다. 평온한 마을에 노래자랑 소식이 울리고 시골에서는 처음 겪는 메가 이벤트에 들뜬 동네사람들이 갈등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 그걸 바깥에서 가볍게 들여다 보는 것 만으로도 두시간의 고요한 감상시간이 즐겁다. 못만들었어도 욕할 수 있는게 아니라 그냥 그랬지만 마음은 따뜻해지는 영화인 것이다. 개인적으로 류현경이라는 배우를 좋아해서 그런지 연기 하나하나도 나름 생각해서 하는게 꽤나 예쁘다.

 

한때 사랑했던 연인 중에 그때의 꿈처럼 사는 이가 몇이나 있을까.

 

노래자랑이 막을 내리고 사람들이 일상으로 돌아가며 영화는 끝난다. 인도영화처럼 피날레 군무가 있는데 노래 선곡이 잘못됐다. (귀에 잘 안들어온다. 어렵고) 사실 이 음악만이라도 고퀄이 나왔으면 백만을 넘겼을텐데 아쉽다. 이 군무에서 류현경의 춤이 많이 귀여우니 팬들은 꼭 보자. 피날레 후에 주인공들의 에필로그가 이어진다. 해피엔딩이고, 재미있는 까메오도 있고 한국영화의 공식을 그대로 따랐으나 망한 불운의 영화다. 그러니까 공부잘하는 애가 쓴다고 그대로 쓰면 꼭 오타가 난다.

 

 


전국노래자랑 (2013)

Born to Sing 
7.8
감독
이종필
출연
김인권, 류현경, 김수미, 오광록, 오현경
정보
코미디, 드라마 | 한국 | 112 분 | 2013-05-01
글쓴이 평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