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꽤 과음을 했는데 9시도 전에 눈이 떠진다. 창문밖 강한 햇살에 절로 눈이 떠진 모양인데 전혀 피곤하지가 않다
운전에 꽤 빡센 일정을 소화했는데도 멀쩡한 건 역시 남해의 공기 때문일까.
◆ 미조항: 아침의 항구, 싱그러운 비릿함
아침 식사 전에 미조항을 가볍게 돌아봤다. 어젯밤과는 사뭇 다른 냄새다. 밤새 조업한 멸치잡이배가 들어오고 있는 항구는 바쁘지만 조용하다. 한창 철이 아니어서 그런지 두서너척의 배가 작업중이고 산더미처럼 쌓인 멸치 주변에 작업하는 사람은 서넛뿐이다. 미조항에서는 짠내음도 없고 비릿내도 미미하다. 흔히 볼 수 있는 썩은내 나는 물웅덩이도 없다. 멸치들은 네모 반듯하게 얼려져 있거나, 산더미처럼 쌓인채로 도매상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바닥 역시 깨끗해서 일반 건물의 내부 같은 느낌이다.
다른 이의 일상 속을 거닐 수 있는 것도 여행의 즐거움이 아닐까 싶다. 이곳에서 조업하는 분들에게는 치열한 생업의 터전이지만 나에게는 어촌마을의 한적함이 생경하고 색다를 뿐이다. 크지 않은 미조항을 가볍게 둘러보고 떠난다.
◆ 상주은모래비치: 은모래 위에서 느끼는 남해의 따사로움
가을에 웬 해수욕장이냐고? 뭘 모르는 소리다.
물 속에서 노는 것만이 해변을 즐기는 방법은 아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여자주인공이 자주하는 대사.. "바다가 보고싶어"라고 할 때의 "바다"는 이렇게 한적하고 여유로운 바다를 의미하는 거다. 예쁘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인 상주은모래비치는 쌀쌀한 가을 하늘 아래서도 뛰어들고 싶게 만드는 마법의 해변이다.
이곳은 마을 어귀에 수달이 살 정도로 깨끗한 환경을 자랑한다.
백사장은 툭툭 털어내면 될 정도로 고운 모래로 되어 있고 물 역시 짜지만 않다면 마실 수 있을 정도다.
백사장 입구 편의점에서 산 커피 두잔을 각자 손에 들고 센치하게 바닷바람을 맞아 보았다.
상주은모래비치는 한여름에도 수온이 일정하고 겨울에는 오히려 따뜻하단다. 9월 말이지만 발 정도는 담그는 걸 허락해 준다.
백사장으로 밀려들어온 조개껍질을 줍는 것도 재미나다.
◆ 남해에서도 최고의 경치로 손꼽히는 이곳. 금산과 보리암
남해관광지도를 보아도, 그 어떤 블로그를 보아도 이곳 금산이 남해의 최고 절경이라고 나와 있다. 게다가 정상 부근에 있는 보리암은 전국에서 세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영험한 사찰이기도 하다. 이성계가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마치고 조선을 세웠다고 하니 수능 잘보게 하는정도의 약발은 이곳에선 축에도 못낀다.
해발 705m의 단촐한 산이지만 바다로 둘러쌓인터라 그 높이는 두배로 느껴진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자동차로 꽤나 올라 갈 수 있어서 실제 등산은 30분 내외.
그렇지만 좁은 1차선은 어쩔 수 없는지 오전에 도착했는데도 30여분을 기다려야 했다. 마을버스를 이용하면 기다리지 않아도 되지만 내려올 일을 생각해서 차로 고고!!
입구에서 파는 4천원짜리 옥수수에 살짝 빈정이 상했지만, 이정도야 뭐.. 웃어 넘기자.
등산복을 갖춰 입고는 열심히 올라가 보지만.. 결국 아빠가 업고 가야 한다.
와이프와 번갈아서 업고 오르다 보니 어느새 보리암 입구다. 30분밖에 안되는 이 짧은 거리가 어찌나 고되던지...
와이프는 정상을 포기하고 나만 홀로 정상으로 오른다.
정상까지 약 10분 정도를 더 오르면 봉화를 올렸던 봉수대가 남아 있어 남해의 한쪽 포구를 내려다 볼 수 있는데 그 경치가 절경이다.
달력에서나 보던 풍광이 펼쳐지는데, 날씨가 맑은 날이면 더 아름답다고 한다. 단체로 관광을 온 팀 아저씨와 기념촬영을 품앗이 하고는 와이프가 기다리는 보리암으로 내려간다.
100개쯤 되는 계단을 내려가니 조촐한 암자가 하나 있다. 규모나 분위기는 부산의 용궁사보다 못한 느낌이지만, 경치만큼은 훨씬 위다.
관광객이 한참 많은데도 밑에서 통제를 하니 그리 붐비지는 않는다. 이성계가 기도했다는 곳까지는 차마 내려가볼 엄두가 나질 않아 암자 주위만 살펴본다.
사실 우리는 관광을 왔지만, 암자에 기원을 드리러 오른 사람도 꽤 되어 보인다. 그리 영험하다 하니 기원이라도 하나 해 볼 걸 그랬다.
◆ 미국마을: 금산에서 다랭이마을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금산쪽에서 다랭이마을로 신나게 달리다 보면 오른편으로 자유의 여신상(?)과 독수리가 한마리 보이는데 그 곳이 바로 미국마을이다. 독일마을의 인기에 힘입은 아류작임이 쉽사리 집작 되지만, 펜션 외형만 본다면 이곳이 훨씬 예쁜 듯 하다. 잠자고 있는 채은이를 잠시 차에 두고 잽싸게 인증샷만 남겼다.
◆ 가천 다랭이마을: 고난의 행군과 유자피자
고난의 시작이다. CNN이 한국에서 꼭 가봐야 할 마을 3가지로 선정했다고 하니 구미가 왕창 당기는 곳이다. 다랭이논을 한마디로 얘기해 보자면 계단식 논이다. 이곳에 조성된 논은 총 100층이 넘는다고 하는데 그걸 내려갔다 와야 한다. 저 아래편 바다가 보인다. 올라올 일은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내려간다.
유난히 맛집이 많은데 대부분 수제막걸리와 화덕피자(유자피자 맛있다!!), 멍게비빔밥 같은 걸 파는데 경치를 보면서 즐길 수 있으니 꼭 먹도록 하자.
땡볕에 힘들었던지.. 아빠를...ㅜㅜ
산 꼭대기에서부터 바다와 맞닿은 절벽까지 내려갈 수 있다. 내려가기는 고되지만 시원한 바다를 느낄 수 있고, 다랭이마을을 쭉 올려다 볼 수도 있다. 그리고 다시 올라갈 걱정도...
힘차게 화이팅 포즈 후에 다시 다랭이마을의 백층 논을 오른다. 화려한 뒤태를 자랑하면서...
그래도 마무리는 신나게!!!
◆ 두곡·월포해수욕장: 색다른 두개의 해수욕장이 함께...
힘든 여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는 두곡·월포 해수욕장 옆의 남해비치호텔이다.(리뷰보러가기)
숙소 리뷰에도 담았지만, 두곡과 월포해수욕장은 각각 백사장과 몽돌 해수욕장이다.
두개의 수영장이 붙어 있어 색다른 모습을 연출한다.
가을날씨에 물놀이는 무리지만, 바위틈바구니에 붙어있는 홍합이니 따개비, 고동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이에게 좋은 체험도 되고..
입자가 너무 고와서 부드러운 카펫을 밟는 느낌의 해변은 마치 전세낸 느낌이다. 하루종일 피곤했을 채은이도 여기서만큼은 신나게 뛰어논다.
바닷가에서 모래도 밟고, 파도도 밟아보며, 미역국을 끓이겠다며 해초를 줍기도 한다.
넓은 공간이 그리도 재밌었는지 악어떼 노래를 부르며 엉금엉금 기기까지 하니.. 어찌 이쁘지 않을 수 있을까...
남해에서의 마지막 밤이 저문다. 오늘밤은 조개찜을 즐겨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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